[이재창의 정치속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 열쇠
쓴소리 꺼려 망가진 대통령들
역대 대통령의 출발도 좋았다. 대체로 60~80%대 지지율을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임기 첫해 2, 3분기 지지율은 83%(한국갤럽)까지 올랐다. 청와대 앞길 개방과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안가 철거, 군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등 ‘국민이 원하는 돈 안 드는 개혁’을 취임 6개월 내에 이뤄낸 결과다. YS의 ‘전광석화 개혁’은 문 대통령 개혁 모델이다. 그런 YS의 임기 말 지지율은 6%까지 떨어졌다. YS만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출범(1992년) 이후 임기 말 지지율이 30%가 넘은 사람은 없다.
역대 대통령의 초라한 임기 말은 단순히 단임제 대통령의 필연인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레임덕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소통과 협치’라는 초심을 잃은 게 더 결정타였다. 쓴소리는 임기 초에만 통했다. 어느 순간 대통령이 쓴소리를 싫어하니 불통으로 치달았다. 소통이 될 리 만무했다. 정책이 표류하면 대통령은 타협 대신 야당 탓만 했다. 결국 측근 비리로 ‘식물정권’이 됐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밟아온 ‘불행의 공식’이다.
문 대통령의 성공 여부 역시 초심을 유지하느냐에 달렸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제1야당 당사를 찾고 취임 2주도 안 돼 여야 지도부를 만났다. 야당과의 소통과 협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 “국민 모두의 정부가 되겠다”며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에서 41.1%를 득표했다.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31.6%다. 유권자 열 명 중 세 사람 정도가 문 대통령을 찍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적극적인 국민통합 행보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당과의 협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은 120석에 불과하다. 야당 도움 없인 법안 하나 처리할 수 없다. 더욱이 정부가 발표한 100대 개혁과제 중 입법을 필요로 하는 게 90%다. 개혁입법은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의 진통보다 더한 험로를 예고한다. 높은 지지율을 앞세운 ‘여론정치’로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유혹은 아예 버리는 게 좋다.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야당 반발로 정치 실종만 부를 게 뻔하다. 정치인이 목을 매는 총선거는 2년9개월이나 남았다. 여론 압박이 통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답답하다고 국회를 해산할 방법도 없다. 야당에 양보하면서 타협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협치하겠다는 초심이 성공의 길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대통령이 독주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탈원전 정책 추진과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무원 증원 등 논란의 중심엔 어김없이 대통령이 있다. 돈이 들지 않은 YS 초기 개혁과는 달리 하나같이 재정을 수반하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폭발력이 큰 사안들이다. “의전총리는 되지 않겠다”던 이낙연 총리는 어디 갔나. 핵심 경제 현안인 증세 논의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독주는 통합과 협치라는 초심에서 멀어진다는 의미다. 우려의 목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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