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통 대학로극장의 귀농…충북 산골서 살아남는 법
30년 역사의 대학로극장은 2015년 4월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로 귀농했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했다.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엔 연극을 하면 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극단의 용기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2년이 흘렀다. 함께했던 단원 중 일부는 극단을 떠났다. 매일 밤 올렸던 공연은 일주일에 두번으로 줄었다. 그동안 극단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들은 부서진 꿈을 어떻게 주워담고, 꿰매서 다시 만들어내고 있을까. 단양군 산골 마을 한켠에 있는 만종리 대학로극장을 찾았다.

◆낮엔 농사꾼, 밤엔 연극인

지금 만종리 대학로극장의 정식 단원은 8명이다. 허성수 총감독과 이주영 PD를 포함한 배우 네댓명이 만종리에 상주한다. 나머지는 서울에서 왔다갔다하면서 공연 연습을 한다. 마을에서 내어준 집 한 채, 빈집을 임대해 수리한 두 채, 이렇게 총 세 채에 감독과 배우들이 나눠 산다.

매주 금, 토요일 저녁 만종리 야외 무대에선 이들이 준비한 연극이 공연된다. 가족극 ‘다녀왔습니다’, 단양 배경의 옛 이야기를 재해석한 ‘온달과 평강’ 같은 작품이다. 관객은 적을 땐 10여명, 많을 땐 200명도 온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알음알음 온다. 철마다 작품을 바꾼다. 낭독극 ‘엄마를 부탁해’, 헤밍웨이의 소설을 각색한 ‘노인과 바다도 만종리에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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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면 관객과 배우들은 무대 옆에 마련된 야외 탁자에 모인다. 어울려 술 한 잔을 나눈다. 작품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한다. 음식은 단원들이 직접 만든다. 보통은 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배우 이동환 씨가 요리한다. “원래 연극 배우들이 부업을 많이 합니다. 저도 그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식당 세 개 정도를 했어요. 다 말아먹었지만 하하.”(이동환 배우)

이들의 낮은 시끌벅적한 주말 저녁과는 조금 다르다. 주업이 농사다. 3000평의 농지를 임대해 옥수수와 마늘 같은 것들을 심었다. 2년 전 봄에 귀농했으니 벌써 3년차 농부들이다. 첫 해엔 수박 토마토를 했다. 두번째는 콩 밀 마늘을 심었다. 올해는 양파 콩 고추 마늘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농약도 안 친다. 게을러서라 말은 하지만 사실은 내려올 때부터 만종리 주민들과 약을 치지 않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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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은 이제 경운기 같은 농기계도 제법 다룬다. 노하우가 생겼다. “저 나름대로는 조금씩 농사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만종리 주민 분들이 보기엔 여전히 서툴기만 하겠지만요. 하하.”(허성수 총감독)

농사지은 작물을 그저 내다팔기만 하는 건 아니다. 수확한 콩으로 두부도 쑤고, 직접 기른 양파로 양파즙도 만들어 판다. 연극 관객이 곧 고객이다. 관객들이 연극에 만족하면, 자연스럽게 배우들이 키운 농작물이며 직접 만든 두부 양파즙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모은 관람료(어른 1만원, 음료 포함)와 음식과 농작물을 판 돈 가지고 단원 8명이 먹고 산다. 물론 넉넉치는 않다.

◆극단은 왜 귀농했나

대학로극장의 역사가 시작된 건 1987년 6월. ‘샘터 파랑새’(1984년) ‘연우 소극장’(1987년)에 이어 서울 대학로에 문을 열었다. 한적한 주택가였던 대학로를 소극장 거리로 만든 주축. 1992년 창작극 ‘불 좀 꺼 주세요’가 대히트를 치면서 20만명을 불러모았다. 28년을 터줏대감으로 버텼다.

2년 전 대학로를 떠나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어보자고 제안한 건 허성수 총감독이다. 극장 임대료가 월 150만원에서 440만원까지 뛰었다. 관람료 수익은 그에 한참을 못 미쳤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연극만으론 먹고 살 수 없다. 그럼 우린 무엇을 겸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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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총감독은 미국의 연출가 피터 슈만을 떠올렸다. 시골에서 연극을 하면서 빵을 만들어 팔아 연극을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든 사람. 까짓것 우리도 한번 해보자 했다. 농업과 예술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농업이 내추럴하고, 연극하고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저희가 공업을 하기에도 그렇잖아요.”

허 총감독의 고향이 충북 단양의 만종리였다. 그는 여기서 나고 자랐다. 단양은 충북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 관광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잘만 하면 뭐가 될 것도 같았다.

손해볼 것도 없었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있었다. “그냥 여기(대학로)에 앉아서 죽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습니다.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최소한 잃을 건 없지 않습니까. 무엇이라도 건강하게 경험해보면 좋은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육체적으로 농사일을 할 수 있어서 이런 엄두를 낼 수 있다고, 나이가 더 많으면 또 못한다고, 그렇게 단원들을 설득해서 내려왔습니다.”(허성수 총감독)

허 감독의 고향에서는 빈 집 하나를 공짜로 내줬다. 극단은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매일 저녁,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을 하자고 했다. 낮에는 빌린 3000평에 마늘이며 옥수수 농사를 지어서 관객들에게 팔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귀농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에 해바라기 8000포기를 심은 것. 늙어가는 만종리를 새로 디자인하자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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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원 옥수수를 12만원에 내다판 사연

의욕적으로 심었던 마을 해바라기는 귀농 둘째 해에 사라졌다. 생각만큼 예쁘지도 않고,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좋아했는데, 딴 곳에서도 이미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 잔해가 마을에 나고 있긴 합니다. 현실은 생각과 참 달랐습니다.”(허성수 총감독)

연극쟁이들에게 농사일은 어려웠다. 첫 해 지은 수박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농약을 안 치다보니 수박 안이 썩고 짓무르고 엉망이 됐다. 그 다음해 심은 옥수수는 사실 야심작이었다. 공판장에다 내다 팔면 옥수수 하나당 200~300원씩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맛있게 잘 삶은 걸 3개 묶어 공연장에서 팔면 4000원에 내놔도 팔릴 것 같았다. 이거다 싶었다. ‘여름 축제 때 사람들이 많이 오면 그 때 옥수수를 삶아서 팔자.’

옥수수 종자를 구입하고 퇴비도 사고 이리저리 알아봐서 새 밭도 빌렸다. 수확을 위한 트럭도 구했다. 200만원이 넘게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축제 시기에 비해 옥수수가 너무 빨리 여물었다. 만종리 주민들은 여물고 일주일만 지나도 딱딱해져 맛이 없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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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이 뒤집어졌다. 부랴부랴 옥수수를 따서 단양과 제천 시내를 다 돌아다녔다. 떨이로 팔아보려고 했지만 판로를 미리 알아놓지 않아 쉽지 않았다. “200만원 쓰고 고생까지 했는데 달랑 12만원 벌었습니다. 옥수수로 부자 한번 돼보겠다는 꿈이 산산조각났죠 뭐.”(허성수 총감독)

한번은 직접 재배한 밀을 가지고 피자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직접 키운 토마토로 피자 소스까지 만들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터 슈만이 빵을 팔면, 우리는 우리밀 피자를 팔자!’ 경북 청도에서 ‘철가방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전유성 씨가 도왔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피자 화덕을 선물했다. 화덕에다 몇번을 구워보며 야심차게 내놓은 첫 작품.

“그런데 관객들이 맛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브랜드 피자랑 비교하면서 별로라고 하니까, 신났던 저희도 풀이 확 죽는거죠. 아무리 내추럴한 맛이 있다고 항변해봤자 그건 파는 사람 입장이고. 사실 사 먹는 사람은 그게 아니거든요. 저희야 이걸 직접 키우고 만들어서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정성을 사주세요, 노력을 사주세요’ 하면서 휴머니즘에만 호소하는 건 양심이 없잖아요. 사람들 입맛에 맞춰 내놓아야 했던 건데, 처음엔 그걸 몰랐죠.”(이주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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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을 떠난 사람들

귀농한 첫해는 공연을 매일 밤 했다. 낮에 농사일을 하다보니 저녁이면 체력이 방전됐다. 하지만 연극을 안 하면 귀농한 명분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어떤 날은 술 취해서 온 동네 아저씨 한명을 앞에 두고 연극을 했다. 아예 관객이 없는 날도 있었다. 겨울이 돼 추워지면 난로를 피워놓고 했다.“한명이 오든 두명이 오든 매일매일 했어요.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허성수 총감독)

극단의 자립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월급조차 제대로 보장을 못했다. 시골에 틀어박혀 있다보니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회의감도 몰려왔다. 희망은 일단 쏘아올렸지만, 그 희망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다들 으쌰으쌰 했는데, 현실적인 벽아 높았습니다. 농사일이 오죽 힘듭니까. 시골에서 평생 연극하는 것도 사실 막막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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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이 힘든지, 그래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꿈꾸는지를 말했다. 그 과정에서 극단을 떠난 단원들도 있다. 단원 수는 2년 전 15명에서 지금 8명으로 줄었다. “젊은 배우들은 그냥 시골에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 도시적인 것을 접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게 맞아요. 무조건 같은 단원들로 계속 가자기보다는 한두명씩 바뀌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허성수 총감독)

떠난 사람도 있지만 새로 합류한 이들도 있다. 지금 극단의 살림을 맡아하고 있는 이주영 PD 같은 사람들이다. 도시 출신인 이 PD는 원래 관객으로 만종리를 찾았다. 그러다 연극과 만종리에 반했고,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와 단원이 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이 시골 가면 첫해는 좋아하다가 몇 해 지나면 외로워서 사람 찾아 도시로 떠난다고 하는데, 저도 그 케이스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직은 힘들기보단 즐겁습니다. 처음엔 극단 기획 일을 하다가 최근엔 배우로도 만종리 무대에 서고 있어요.” (이주영 PD)


◆만종리극장이 살아남는 법

이주영 PD가 합류해 야심차게 맡은 건 말 그대로 극단의 ‘생계’다. 연극도 좋지만 일단은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고 봤다. 매일 밤 하던 공연은 금, 토 일주일에 이틀로 줄였다. 올해는 작년에 농사지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았다. “그냥 콩으로 팔면 200만원 받을 걸, 된장 담아서 팔면 1500만원 어치로 팔 수 있겠더라고요. 저희가 일단 먹고는 살아야하다보니 하하. 이것도 옥수수처럼 실패할 수도 있지만 꿈은 큽니다.”(이주영 PD)

최근 히트작은 직접 키운 양파로 만든 양파즙. 1주일만에 500만원 어치가 팔렸다. 콩으로 두부도 쑤어판다. 땔나무로 불 때서 직접 만든 손두부다. “콩이 한 말에 4만원 쯤 한다고 치잖아요. 그걸 두부를 만들어서 팔면 12만원에 팔아요. 그런데 다른 시장에서 사면 15만원이거든요. 저라면 저희 두부 살 것 같은데(웃음). 작년에 콩 농사가 잘 돼서, 된장 두부 다 맛있을 겁니다.” 된장과 두부를 만드는 일엔 만종리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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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인근 관광지인 온달산성에서 무료 공연도 하는데, 그 때 옥수수와 양파즙을 판다. 밋밋한 맛으로 실패했던 피자 레시피도 다시 연구했다. 여름 축제 때 내놓기 위해서다.

사실 요즘 연극이 끝난 뒤 내놓는 음식들 반응이 꽤 괜찮아서 자신이 붙었다. 후라이드 치킨이며, 쭈꾸미볶음 같은 것들이다. “사실 ‘여기 음식이 맛있겠어?’하다가 퀄리티가 있으면 사람들이 감동을 합니다. 주변에 입소문도 날 거고요. 저희가 어설프게 해도 용인은 해주시겠지만 그럼 그 이상의 감동은 없겠죠.”(허성수 총감독) 올해는 옥수수를 제 때 수확해서 축제 때 팔겠다는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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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연극하며 산다

이들이 올리는 작품엔 늘 주민 배우가 선다.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파출소장 같은 사람들이다. 만종리극장의 대표작 ‘다녀왔습니다엔 만종리 농부와 제천에 사는 주부, 직장인들이 출연한다. 이 연극에 나오는 배우가 총 7명인데, 3명이 프로고 나머지 4명은 아마추어다.

처음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낭독극으로 시작했다.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낭독극에서 연기에 소질을 보인 사람을 골라 정식 배역을 맡겼다. “서울에서 연극하는 친구들을 불러서 공연을 보여주면 놀랍니다. 프로 배우들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허성수 총감독)
30년 전통 대학로극장의 귀농…충북 산골서 살아남는 법
고추밭 농부인 허범종 씨, KBS 충주방송국에서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정지성 아나운서도 만종리극장의 객원 멤버다. 다들 생계에 바쁜 와중에 짬을 내 연습하고 있다. 그럴 이유가 있다. 오는 7월 27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단양 여름 만종리 축제’가 열린다. 보통 때는 일주일에 금, 토 이틀만 공연을 하지만 축제 기간엔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무대가 선다.

이번 축제 땐 신작인 ‘온달과 평강’을 만종리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단양군 영춘면의 온달산성에 전해져 내려오는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가 연극 소재다. “단양이라는 지역에 저희 나름대로 문화를 채색해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단양 가서 ‘와 자연 좋네’만 하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연계된 문화예술도 보고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족극 ‘다녀왔습니다’와 모노드라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도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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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리 대학로극장은 가을이 오면 ‘밀밭 웨딩’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이다. “요즘엔 결혼 30주년을 맞아 리마인드 웨딩 같은 것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걸 저희 만종리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 중입니다. 배우들이 재미있는 이벤트도 해 드리고요.”

다른 또 하나는 연극과 어린이 체험활동과의 연계다. ‘연극하면서 피자만들기’ ‘허수아비 되기 놀이’ 같은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 있다. “처음엔 무조건 해바라기를 심자, 농사를 죽어라 짓자, 연극을 매일 하자, 하는 무대뽀정신이 앞섰다면 지금은 계획들이 조금씩 현실화,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허성수 총감독)

사실 극단은 더 하고 싶은 게 많다. 물론 다 실행하지는 못 한다는 사실도 안다. 사람도 부족하고 돈도 없어서 추진력이 팍팍 안 생긴다고 했다. 그래도 귀농 첫해보다는 다음해 더 나아졌고, 올해 역시 작년보다 조금은 더 괜찮아졌다는 게 극단의 얘기다. 대학로에 있을 땐 일년에 작품 하나 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만종리에 와선 공연만 벌써 200여차례 했다.

허성수 총감독은 만종리 대학로극장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연극이 완성되는 과정에 비유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대에 한번 올라간 작품은 그걸로 완성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은 사실 그렇게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수십년간 공연하면서 고치고, 보강하고, 보살피면서 계속 키워나가는 거죠. 농작물의 키가 매일 자라는 것처럼 저희 극단도 지금 그렇게 성숙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요.”

단양=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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