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용산 참사 등 경찰력 투입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사건에 대해 민간 주도의 진상조사가 시작된다. 지난달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가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인권친화적 경찰개혁 권고안’을 경찰에 제시해 경찰청이 이를 적극 수용키로 했다. ‘인권경찰’에 대한 청와대 주문을 적극 반영한 것이지만 ‘정당한 공권력 행사까지 국가 폭력으로 매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강정마을 공권력 집행 '자아비판' 선언한 경찰
◆조사위 내달 출범…여론몰이 우려도

‘경찰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은 이날 경찰개혁위가 제시한 권고안의 핵심이다. 인권침해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조사위는 9~10명 규모로 출범한다. 3분의 2는 민간조사관으로, 나머지는 경찰로 꾸려진다. 구체적인 명단은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된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반영키로 했다.

2004년 이후 경찰력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던 사건이 조사 대상이다. 백남기 농민 사건,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농성 진압, 밀양 송전탑 반대시위, 제주 강정마을 진압 등이 거론된다. 시민들이 제보하는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조사에서 범법행위가 밝혀질 경우 징계·고발을 건의할 방침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혀진 사건까지 무리하게 조사해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인권침해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 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집행까지 위축시킬 것이란 시각이다. 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얼마만큼 정확하고 객관적인가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언급되는 사건들은 대체로 징계시효가 만료된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처벌 근거가 빈약한 상황에서 경찰청이 여론에 밀려 무리한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 개혁위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보고 징계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최종 결정은 경찰청 몫”이라고 말했다.

◆녹화 확대·수사일몰제로 ‘인권 수사’

개혁위는 인권침해를 줄일 수사개혁안 3건도 이날 함께 권고했다. 정식 수사 전 조사 단계에서부터 피의자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조사 일시와 장소를 변호인과 협력하고,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과 소통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식이다.

회유, 자백 강요 등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영상녹화 대상 범위도 확대한다. 지금은 3.7% 정도만 영상녹화되고 있다. 영상녹화를 하지 않는 사건은 진술을 녹음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또 내사는 6개월, 기획(인지)수사는 1년이 지나면 사건을 종결하는 일몰제를 도입한다. 기간이 더 필요할 경우 상급기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합리적인 이유 없는 장기간 수사를 막기 위해서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개혁위에서 제시한 권고안 네 건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해 모든 권고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권고안의 실행계획을 신속히 마련해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