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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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이 거센 ‘원가 공개’ 압박에 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전형료 획기적 인하” 주문이 나온 지 나흘 만에 교육부가 관련 훈령 개정에 착수하면서다. 43개 대학 총학생회가 문 대통령에 공개 대화를 제안한 대학 입학금 폐지 문제도 19일 대학들과 논의 테이블을 차린다.

두 사안 모두 핵심은 원가 공개다. 대학마다 제각각인 전형료와 입학금의 구체적 산정기준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거품이 꼈는지 보겠다”는 교육 당국의 말을 대학들은 “내리라는 얘기”로 받아들였다. 수험생과 학부모 부담 완화를 명분으로 대학을 유도·압박하는 모양새가 될 전망이다.

◆ 文대통령 발언 나흘 만에 전형료 인하 '드라이브'

이진석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직무대리)은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현행 ‘대학 입학전형 관련 수입·지출의 항목 및 산정방법에 관한 규칙’에는 대학이 전형료를 걷어 사용하는 12개 지출 항목만 나와 있다. 전형료 산정기준 등을 밝힌 수입 항목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이 전형료 수입을 남기거나 지출을 과다 책정해 ‘거품’이 생길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전형료 실태조사, 정책 연구, 훈령 개정 절차를 차례로 밟기로 했다. 내년 3월까지 표준원가 개념을 적용한 개정 훈령, 즉 ‘전형료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올해 입시에서도 대학들의 전형료 인하를 유도한다. 이 실장은 “전형료 인하에 동참하지 않는 대학은 실태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형료 금액 자체가 높거나 유사한 유형인데 다른 대학보다 전형료가 비싼 경우도 중점 조사한다.

사실상 압박이다. 대학 입장에선 ‘표적조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 교육부가 1차 실태조사 타깃으로 삼은 ‘지난해 입시 지원자 3만 명 이상인 25개 대학’에 든 A대 입학처장은 “이미 책정된 전형료를 근거로 예산을 써 왔는데 올해 당장 전형료를 내리라는 건 무리”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학들은 정부의 ‘가격 통제’ 시도를 우려했다. 대학마다 형편이 다른데 원가를 빌미로 획일적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재 B대 입학처장은 “똑같은 전형이라도 지원자가 많으면 평가 기간과 투입 인력이 늘어나 소요경비가 더 들어간다. 이런 점을 보지 않고 ‘왜 같은 전형인데 더 비싸냐’는 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입학전형료 반환’ 규정을 따르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대학은 전형료 수입을 전형 관련 홍보비·인건비 등 정해진 용도로만 쓰고 남으면 반환하게 되어있다. 지난 2013년 “대학들이 전형료 장사를 한다”는 비판에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마련한 규정이다. 실제 반환율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면접 등 ‘고비용 전형’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강하게 압박하면 대학들은 전형료 지출 비중이 높은 홍보비(평균 33%)와 인건비(평균 17%)부터 줄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C대 입학처장은 “홍보비를 줄이면 시골 고교 방문 입학설명회는 없애고 효율이 높은 대도시 설명회 위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무조건 전형료를 내릴 경우 평가 절차가 부실해지고 나아가 입시 공정성까지 해칠 수 있다”고 짚었다.
[분석+] '원가 공개' 덫에 빠진 대학들
◆ 총학생회들 '대통령 대화제안'…입학금 문제 논의

입학금 폐지 문제도 다룬다. 이진석 실장은 이날 대학 기획처장들과 만나 입학금 제도 개선을 위한 비공개 간담회를 갖는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에 입학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낸 대학생 9782명이 재학하는 15개 대학 기획처장이 간담회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건국대·경희대·고려대·서강대·연세대·중앙대·한양대·홍익대 등이 해당된다.

43개 대학 총학생회가 문 대통령에게 입학금 폐지 등 대학 현안 해결을 위해 공개 대화를 제안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입학금 폐지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총학생회들이 ‘학내 사안’으로 여겨지던 입학금 폐지에 대통령이 적극 나서달라고 요구한 배경이다.

대입 전형료와 달리 입학금에 대한 별도 조사는 하지 않는다. 관련 정책 연구는 진행할 예정이다. 노진영 교육부 대학장학과장은 “입학금은 대학정보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모두 공개돼 있고 각 대학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만큼 실태조사 계획까지는 없다. 단 대학들이 명확한 근거 없이 입학금을 징수했다고 지적받는 부분은 들여다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입학금 논란은 0원부터 100만 원 내외까지 천차만별인 대학별 편차에서 비롯됐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7학년도 입학금 102만4000원만 원을 걷은 동국대를 필두로 한국외대(99만8000원) 고려대(99만6600원) 홍익대(99만6000원) 인하대(99만2000원) 세종대(99만원) 연세대(98만5000원) 등은 입학금이 100만 원에 육박했다. 반면 광주가톨릭대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기원(DGIST) 인천가톨릭대 한국교원대 5곳은 입학금이 없었다.

교육부령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에는 “입학금은 학생 입학시 전액을 징수한다”는 조항만 명시됐다. 입학금의 구체적 근거나 기준을 밝히라는 내용이 없어 대학들이 ‘고무줄 산정’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입학금이 일괄 폐지되면 대학들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국 4년제 종합대와 전문대의 입학금은 총 4093억 원(2015학년도 기준)에 달한다.

◆ '원가 공개'하라는 정부, 고등교육 예산은 낙제점

대학 수입원에 대한 원가 공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1~2012년 반값 등록금 논란 당시 한국사학진흥재단은 등록금 원가를 실제 금액의 60% 수준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별다른 반향은 없었다. 대학별, 전공별 특성과 대학의 미래 투자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전형료·입학금 등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과 원가 공개를 별개로 봐야 하는 이유다.

대학에는 원가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운 지점이 곳곳에 있다. 원가대로라면 문과대학의 5~6배씩 교육비가 투입되는 의대 등록금은 3000만 내외로 뛸 수 있다. 대학 도서관 같은 기본 인프라 구축에 재원을 사용하는 것마저 어려워진다. 이 같은 맹점을 고려해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대학들에 경상비를 지원해왔다. 원가 공개 같은 압박 대신 마중물을 붓는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높은 인건비에 원가 잣대를 들이대 ‘거품’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인식이다. 대학들은 “우수 교수진 확보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는 반론을 펼쳤다. 대학 적립금이 과다하다는 비판과 관련해 문봉희 숙명여대 기획처장은 “대학은 미래 장기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원가 공개 압박에 대학들은 “원가에만 얽매이면 교육서비스 품질과 대학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 D대 관계자는 “원가로 보면 1만5000원짜리 삼계탕의 생닭 값은 2000원도 안 된다. 고등교육 정책 방향을 원가 따지지 않는 아이폰처럼 품질을 높이는 쪽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0.8%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GDP의 1.2% 수준에 못 미친다. 강낙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OECD의 평균 고등교육 재정 부담 비율은 정부 70%, 민간 30%인데 우리는 반대로 민간 70%, 정부 30% 수준”이라고 했다. 정부가 자기 역할부터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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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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