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입으로 두말하는 백운규 후보자
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나흘 전 우연히 그와 통화한 일이 있다.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에너지 정책을 짠 백 후보자는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안다. 기술을 사장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백 후보자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에 대해서는 “해당 공약 작성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뒤 “신고리 5·6호기 주변에 이미 원전이 많기 때문에 그곳에 추가로 원전을 짓게 한 결정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급격한 탈(脫)원전 정책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대통령도 무리하면서까지 탈원전 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원전도 40~50년 후를 생각하며 페이드아웃(서서히 소멸시키는 것)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내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전문가이기 때문에 급격한 탈원전을 주장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랐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이틀 앞둔 지난 17일 공개된 백 후보자의 사전 답변자료는 그 당시 통화 내용과 차이가 있었다. 백 후보자는 “원전 문제를 원자력계에만 맡겨선 안 된다. 탈원전 로드맵에는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설계수명 연장 금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 수뇌부가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답변이었다. 같은 날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금융수수료 결정에 금융당국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소신을 밝힌 것과 비교됐다.

산업부는 자원(에너지)뿐만 아니라 산업과 통상의 주무 부처다. 산업과 통상 쪽에 경험이 없는 백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 산업부 내에선 우려스런 시각이 많았다. 에너지 정책 역시 지나치게 한쪽에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 백 후보자가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부하 공무원들의 걱정부터 풀어줘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내려온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하는 ‘허수아비’ 장관이 될 것인지, 부하 공무원들에게 신망받는 장관이 될지는 후보자 소신에 달려 있다. 그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첫 시험대가 19일 열리는 인사청문회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