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이석우 SWNA 대표 "뻔하지 않은 디자인? 제품의 본질부터 고민할 때 아이디어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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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메달 디자인 한 이석우 SWNA 대표
서울 서교동에 있는 디자인컨설팅회사 SWNA에는 기밀이 많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유명 건설회사의 새로운 아파트 디자인 콘셉트 자료가 잔뜩 붙어 있었다. 다른 쪽엔 3차원(3D) 프린터로 뽑은, 아직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모형이 놓여 있었다. 이석우 SWNA 대표는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메달 디자인에 반영할지 고심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디자인 콘셉트 전략을 세우고, 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하는 그의 직업은 산업디자이너다. 그것도 국가대표급 산업디자이너다. 삼성 LG SK 등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하이얼, 레노버, 델, 디즈니 등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외국 기업이 그에게 디자인을 맡기고 디자인 전략을 의뢰하려 줄을 선다. “제품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본질부터 고민한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남다른 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순수 국내파로 처음 IDEA 금상 받고 해외 스카우트
그가 산업디자이너로 꿈을 굳힌 건 대학 3학년이 다 돼서였다. 1978년생인 이 대표는 서울예고 조소과를 졸업했다. 대학도 조소과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재수해서 이듬해 들어간 곳이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였다. 그는 “재수할 때 목표를 시각디자인과로 바꿨지만 특차에서 떨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디자인에 대한 미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하고, 그래픽디자인회사에서 틈틈이 일했다. “산업디자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전자제품인데 저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전자제품 디자인은 남성적이고 케케묵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이런 인식이 바뀐 건 대학에 입학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였다. 일본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와 영국의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제품을 접하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후카사와가 디자인한 제품 중에 가습기가 있어요. 도자기처럼 매끈하고 버튼이나 전자제품 같은 요소가 전혀 없어요. 전자제품이지만 전자제품 같지 않은 디자인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산업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은 굳혔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때 몇 가지 경험이 그에게 용기를 줬다고 한다. 2002년 가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삼성디자인멤버십’에 붙어 미국 LA 삼성전자 모바일랩에 갔는데 그곳에서 의외의 칭찬을 들은 일이었다. “노키아 출신 외국인 디자이너였어요. 노키아 휴대폰을 보고 감탄하다가 직접 노키아 출신 디자이너를 만나 주눅들어 있었는데 저한테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줬습니다. 한국에서만 공부한 나도 승산이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죠.”
그는 대학 졸업 작품인 빛과 오디오를 결합한 미래형 CD플레이어가 2005년 미국산업디자인협회(IDSA)가 주관하는 IDEA 공모전에서 학생 부문 금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조선백자를 연상시키는 매끈한 CD플레이어에 조명을 달고, 이 빛으로 만든 가상의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재생되는 기기였다. 순수 국내파로 이 상을 받은 한국 학생은 그가 최초였다. 그는 이때 이미 삼성전자에 채용돼 모바일사업부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수상을 계기로 이듬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디자인회사 퓨즈프로젝트에 스카우트됐다. 이어 시애틀에 있는 티그로 옮겼다. 1926년 설립된 이 회사는 60년 넘게 보잉의 비행기 인테리어 디자인을 책임지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 게임기를 디자인한 곳으로 유명하다.
티그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로 보잉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그는 이곳에서 ‘본질부터 고민하는 디자인’을 배웠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온 동료들은 생각하는 게 달랐습니다. 휴대폰을 디자인한다고 치면 저는 기존 형태에서 더 세련되게, 더 날렵하게 그렸죠. 그런데 이 친구들은 대충 끄적거리듯 스케치하면서 ‘인간과 전화는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옆에 적는가 하면,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모양의 휴대폰을 그리기도 해요.” 그는 “한국 디자이너가 보면 ‘저걸 왜 하지. 분명 저대로 못 만들 텐데’하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힘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제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면 결과물도 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주말 개인 작업이 창업으로 이어져
이 대표는 2008년 모토로라 서울스튜디오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리드로 스카우트되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스튜디오는 모토로라 해외지사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여기서 디자인한 신제품이 글로벌 모델로 출시되기도 했다. 트렌드가 빠른 한국 시장의 이점을 노린 전진기지였던 셈이다. 2010년 2월 한국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출시된 모토로이를 그가 디자인했다.
그는 모토로라로 오면서 일과 시간 외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약속받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개인 작업을 했어요. 서울 압구정동에 컨테이너 사무실도 만들었죠. 그러다 일감이 점점 늘면서 두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졌고, 2011년 초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습니다.”
원래 회사 이름은 SWBK였다. 삼성디자인멤버십에서 만난 송병규 디자이너와 동업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면서 이 대표가 이끄는 회사 이름이 SWNA로 바뀌었다.
모토로라를 그만두기 전 개인 작업을 할 때부터 고객이 대림건설이었다. e편한세상 아파트에 들어가는 전등스위치, 온도조절기, 월패드, 방문 손잡이, 단지 내 가로등, 주차 차단기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아파트도 고유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라며 “스위치나 월패드만 보고도 e편한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강점은 제품을 쓰는 사람을 세밀히 관찰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그가 디자인해 올해 iF디자인어워드 본상을 받은 SK브로드밴드의 Btv셋톱박스는 한쪽 모서리만 각지고 나머지는 둥글다. 사람들이 셋톱박스를 가로로 눕혀놓기도 하지만 세워놓는 사람도 많은 점에 착안했다. KT가 VIP를 위해 2015년 만든 우산은 손잡이가 ‘C’자 고리 모양으로 생겼다. KT가 통신사라는 점에 착안해 비오는 날 우산을 팔에 끼고 스마트폰을 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가 가진 강점이 있다고 했다. 민첩하고 성실해 첨단 정보기술(IT)처럼 트렌드가 빠른 산업군에선 한국 디자이너가 프리미엄이 있다고 했다. “제가 중·고교생일 때만 해도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아 새로운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외국 디자이너라고 하면 괜히 위축되기도 했죠. 지금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선 더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나타날 거예요. 다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눈앞의 나무보다 숲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 산업디자이너의 세계
기업성공 신화 뒤에는 항상 '뛰어난 디자인'이 있다
이석우 "소비자 트렌드 항상 관심"
코카콜라는 1915년 “어두운 곳에서도 사람들이 코카콜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병이 필요하다”며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여기서 당선된 것이 병 중간이 볼록하고 주름진 ‘코카콜라 컨투어 병’이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디자인으로 평가되며, 디자인 가치만 약 4조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기업의 성공신화 뒤에는 뛰어난 산업디자인이 자리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아이폰 하나로만 지금까지 90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애플에는 디자인에 집중한 고(故) 스티브 잡스 창업자와 조너선 아이브라는 걸출한 산업디자이너가 있었다. 발뮤다는 ‘일본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린다. 단순하지만 유려한 디자인의 선풍기, 가습기, 공기청정기 등으로 2009년 4500만엔(약 4억6000만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약 55억엔에 이르는 큰 성공을 이뤄냈다.
산업디자이너의 몸값도 높아지는 추세다. 애플의 산업디자이너 평균 연봉은 2014년 기준 16만7260달러(약 1억8900만원)였다. 시니어 하드웨어 엔지니어(13만8753달러)와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13만130달러) 등을 제치고 애플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직군이다.
단순히 제품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기업에 디자인 전략을 세워주는 것도 산업디자이너의 몫이다. 이 때문에 산업디자이너는 제품 디자인에 필요한 지식 외에도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사회 분위기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이석우 SWNA 대표는 “여러 디자인 가운데 왜 이 디자인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 기업을 설득하려면 단순히 예쁘다는 말 대신 소비자 트렌드가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식으로 논리적 설명을 붙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아파트 디자인 콘셉트 전략을 세우고, 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하는 그의 직업은 산업디자이너다. 그것도 국가대표급 산업디자이너다. 삼성 LG SK 등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하이얼, 레노버, 델, 디즈니 등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외국 기업이 그에게 디자인을 맡기고 디자인 전략을 의뢰하려 줄을 선다. “제품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본질부터 고민한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남다른 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순수 국내파로 처음 IDEA 금상 받고 해외 스카우트
그가 산업디자이너로 꿈을 굳힌 건 대학 3학년이 다 돼서였다. 1978년생인 이 대표는 서울예고 조소과를 졸업했다. 대학도 조소과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재수해서 이듬해 들어간 곳이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였다. 그는 “재수할 때 목표를 시각디자인과로 바꿨지만 특차에서 떨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디자인에 대한 미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하고, 그래픽디자인회사에서 틈틈이 일했다. “산업디자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전자제품인데 저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전자제품 디자인은 남성적이고 케케묵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이런 인식이 바뀐 건 대학에 입학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였다. 일본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와 영국의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제품을 접하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후카사와가 디자인한 제품 중에 가습기가 있어요. 도자기처럼 매끈하고 버튼이나 전자제품 같은 요소가 전혀 없어요. 전자제품이지만 전자제품 같지 않은 디자인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산업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은 굳혔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때 몇 가지 경험이 그에게 용기를 줬다고 한다. 2002년 가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삼성디자인멤버십’에 붙어 미국 LA 삼성전자 모바일랩에 갔는데 그곳에서 의외의 칭찬을 들은 일이었다. “노키아 출신 외국인 디자이너였어요. 노키아 휴대폰을 보고 감탄하다가 직접 노키아 출신 디자이너를 만나 주눅들어 있었는데 저한테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줬습니다. 한국에서만 공부한 나도 승산이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죠.”
그는 대학 졸업 작품인 빛과 오디오를 결합한 미래형 CD플레이어가 2005년 미국산업디자인협회(IDSA)가 주관하는 IDEA 공모전에서 학생 부문 금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조선백자를 연상시키는 매끈한 CD플레이어에 조명을 달고, 이 빛으로 만든 가상의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재생되는 기기였다. 순수 국내파로 이 상을 받은 한국 학생은 그가 최초였다. 그는 이때 이미 삼성전자에 채용돼 모바일사업부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수상을 계기로 이듬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디자인회사 퓨즈프로젝트에 스카우트됐다. 이어 시애틀에 있는 티그로 옮겼다. 1926년 설립된 이 회사는 60년 넘게 보잉의 비행기 인테리어 디자인을 책임지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 게임기를 디자인한 곳으로 유명하다.
티그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로 보잉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그는 이곳에서 ‘본질부터 고민하는 디자인’을 배웠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온 동료들은 생각하는 게 달랐습니다. 휴대폰을 디자인한다고 치면 저는 기존 형태에서 더 세련되게, 더 날렵하게 그렸죠. 그런데 이 친구들은 대충 끄적거리듯 스케치하면서 ‘인간과 전화는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옆에 적는가 하면,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모양의 휴대폰을 그리기도 해요.” 그는 “한국 디자이너가 보면 ‘저걸 왜 하지. 분명 저대로 못 만들 텐데’하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힘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제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면 결과물도 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주말 개인 작업이 창업으로 이어져
이 대표는 2008년 모토로라 서울스튜디오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리드로 스카우트되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스튜디오는 모토로라 해외지사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여기서 디자인한 신제품이 글로벌 모델로 출시되기도 했다. 트렌드가 빠른 한국 시장의 이점을 노린 전진기지였던 셈이다. 2010년 2월 한국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출시된 모토로이를 그가 디자인했다.
그는 모토로라로 오면서 일과 시간 외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약속받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개인 작업을 했어요. 서울 압구정동에 컨테이너 사무실도 만들었죠. 그러다 일감이 점점 늘면서 두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졌고, 2011년 초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습니다.”
원래 회사 이름은 SWBK였다. 삼성디자인멤버십에서 만난 송병규 디자이너와 동업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면서 이 대표가 이끄는 회사 이름이 SWNA로 바뀌었다.
모토로라를 그만두기 전 개인 작업을 할 때부터 고객이 대림건설이었다. e편한세상 아파트에 들어가는 전등스위치, 온도조절기, 월패드, 방문 손잡이, 단지 내 가로등, 주차 차단기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아파트도 고유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라며 “스위치나 월패드만 보고도 e편한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강점은 제품을 쓰는 사람을 세밀히 관찰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그가 디자인해 올해 iF디자인어워드 본상을 받은 SK브로드밴드의 Btv셋톱박스는 한쪽 모서리만 각지고 나머지는 둥글다. 사람들이 셋톱박스를 가로로 눕혀놓기도 하지만 세워놓는 사람도 많은 점에 착안했다. KT가 VIP를 위해 2015년 만든 우산은 손잡이가 ‘C’자 고리 모양으로 생겼다. KT가 통신사라는 점에 착안해 비오는 날 우산을 팔에 끼고 스마트폰을 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가 가진 강점이 있다고 했다. 민첩하고 성실해 첨단 정보기술(IT)처럼 트렌드가 빠른 산업군에선 한국 디자이너가 프리미엄이 있다고 했다. “제가 중·고교생일 때만 해도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아 새로운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외국 디자이너라고 하면 괜히 위축되기도 했죠. 지금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선 더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나타날 거예요. 다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눈앞의 나무보다 숲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 산업디자이너의 세계
기업성공 신화 뒤에는 항상 '뛰어난 디자인'이 있다
이석우 "소비자 트렌드 항상 관심"
코카콜라는 1915년 “어두운 곳에서도 사람들이 코카콜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병이 필요하다”며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여기서 당선된 것이 병 중간이 볼록하고 주름진 ‘코카콜라 컨투어 병’이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디자인으로 평가되며, 디자인 가치만 약 4조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기업의 성공신화 뒤에는 뛰어난 산업디자인이 자리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아이폰 하나로만 지금까지 90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애플에는 디자인에 집중한 고(故) 스티브 잡스 창업자와 조너선 아이브라는 걸출한 산업디자이너가 있었다. 발뮤다는 ‘일본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린다. 단순하지만 유려한 디자인의 선풍기, 가습기, 공기청정기 등으로 2009년 4500만엔(약 4억6000만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약 55억엔에 이르는 큰 성공을 이뤄냈다.
산업디자이너의 몸값도 높아지는 추세다. 애플의 산업디자이너 평균 연봉은 2014년 기준 16만7260달러(약 1억8900만원)였다. 시니어 하드웨어 엔지니어(13만8753달러)와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13만130달러) 등을 제치고 애플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직군이다.
단순히 제품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기업에 디자인 전략을 세워주는 것도 산업디자이너의 몫이다. 이 때문에 산업디자이너는 제품 디자인에 필요한 지식 외에도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사회 분위기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이석우 SWNA 대표는 “여러 디자인 가운데 왜 이 디자인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 기업을 설득하려면 단순히 예쁘다는 말 대신 소비자 트렌드가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식으로 논리적 설명을 붙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