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어제 전당대회를 열어 홍준표 전 경남지사를 대표로 선출하는 등 새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지난해 12월 이정현 대표 체제가 무너진 지 6개월 지나서야 정상적 지도체제를 갖춘 것이다. 한국당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다. 지지율은 7%까지 곤두박질쳤다. 바른정당에도 뒤졌다. 의원 100석이 넘는 보수정당이 이렇게까지 지리멸렬한 적은 없다. 홍 신임 대표의 앞은 온통 가시밭길이다.

위기는 한국당이 자초한 것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대패하고도 반성은커녕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초·재선들이 정풍(整風)운동이라도 했다. 이번 대표 경선에선 계파 싸움과 막말 공방으로 날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오죽했으면 보수층마저 외면했을까 싶다.

더 근본적인 한국당의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다.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성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한국당은 스스로 ‘보수 본류’라고 한다. 그러나 표를 얻는 데만 급급해 보수의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작은 정부를 외면하던 게 다반사였다. 2012년 대선 때는 야당이 무색할 정도로 경제민주화 구호를 외쳤던 게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다. 그렇다고 여당 견제라는 야당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청문회에서 국가관과 도덕성, 능력이 부적격으로 확인된 후보자들에 대한 공격의 날은 현 여당의 야당 시절에 비해 훨씬 무뎌졌다는 지적도 받는다.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 문재인 정부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안보,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좌파적 정책이 넘치고 있지만 보수정당으로서 좌표 설정도 못 하고 있다. 지난 9년간 여당으로 안주하면서 ‘웰빙’에 젖어 살아온 결과다.

여당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보수정당은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한다. 홍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육참골단(肉斬骨斷: 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의 각오로 혁신해야 한다”며 “보수우파를 재건하는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또 “우파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관건은 실천이다. 그간 이런 약속을 하고 ‘말뿐’이었던 대표들이 많았다. 홍 대표는 이들과 다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