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꽃 화분 30만개 파는 시클라멘 명인
경기 파주시 마지리에서 4000평(1만3200㎡) 규모의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채원병 은성농장 대표(65)는 원예업계에서 ‘시클라멘 전도사’로 불린다. 올해로 28년째 화분용 꽃 시클라멘을 키우고 있는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꽃 재배 노하우를 후배 화훼농부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매년 일본의 베테랑 농민과 원예 전문가를 초청해 재배 기술을 함께 익히는 시간도 갖는다. 10여년 전엔 그동안 익힌 재배 노하우를 정리한 책을 다른 농민들과 함께 펴내 전국 화훼농가에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몇 번을 자빠졌었다”며 “후배 농부들은 좋은 길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술 나눔을 시작했다” 고 말했다.

파주 문지리가 고향인 채 대표는 1970년부터 50년 가까이 파주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지금은 유리온실에서 시클라멘과 캄파눌라, 운간초, 보르니아 등 화분용 꽃을 키워 연간 3억원대의 매출을 올린다. 화훼농사를 짓기 전엔 토마토, 오이 등 채소와 쌀 농사를 지었다. 20여년간 젖소도 키워봤다. 군 생활 기간을 제외하곤 고교 졸업 이후 농사를 쉬어본 적이 없다.

◆젖소로 영농의 기틀 마련

원래부터 농사를 지으려 했던 건 아니다. 1970년 고교를 졸업한 채 대표는 공장에 취직하려 했다. 공장에서 기술을 배운 뒤 독립해 자신만의 공장을 차리는 게 꿈이었다. 5남매의 장남이던 그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떠맡고 있던 농삿일를 도와야만 했다.

처음엔 벼농사로 시작했다. 60㎏ 포대 70가마 남짓을 수확하는 크지 않은 논에만 기대서는 가족을 돌볼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1972년 어느 날 채 대표는 손수레에 이제 맛 젖을 뗀 젖소 송아지 두 마리를 싣고 마을로 들어선다. 농협에서 빌린 영농자금 10만 원에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3만 원을 보태 서울 면목동 우시장에서 사온 송아지였다. 그는 “대출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마을 영농회장을 찾아갔었는데 군대도 안 다녀온 녀석이라고 콧방귀를 뀌었다”며 “일주일 넘게 매일 새벽 5시에 영농회장 집을 찾아가 졸라댄 덕분에 간신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송아지 두 마리는 채 대표가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가 군 생활을 할 동안에도 동생들은 젖소에서 짜낸 우유를 납품해 학비를 마련하고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채 대표 말대로 ‘참 고마운 송아지들’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그는 차츰 농장 규모를 늘려나간다. 1979년 외국에서 들여온 젖소 10마리를 분양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 말 젖소를 30마리까지 늘렸다.
1년에 꽃 화분 30만개 파는 시클라멘 명인
◆새로운 도전, 시클라멘

1990년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낙농업을 접고 화훼 재배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500평(1650㎡) 남짓한 축사로는 사업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크지 않은 땅에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이 뭘까’를 고민한 끝에 화훼를 선택했다. 화훼농가들이 모여있던 인근 고양시 일대가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화훼농가들이 파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주 재배작물로 시클라멘을 골랐다. 하트 모양의 꽃잎이 나는 독특한 외향에다 건조한 실내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특성 덕분에 당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한 꽃이다.
1년에 꽃 화분 30만개 파는 시클라멘 명인
◆20년 만에 화훼명인으로 뽑혀

채 대표는 화훼 재배에 뛰어든 지 20년만인 2010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화훼분야 명인으로 선정된다. 최고농업기술명인은 매년 식량, 채소, 과수, 화훼·특작, 축산 분야별로 각각 1명씩의 대표 농부를 선발하는 제도다.

그는 자신이 화훼명인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20년 넘게 일본 농민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재배 노하우를 습득한 것을 꼽았다. 1991년 ‘선진농업 시찰 연구프로그램’을 일본 치바현 사쿠라시에 화훼 단지를 방문한 그는 그때 만났던 일본 농민들과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많을 땐 1년에 다섯 차례, 적어도 한 번은 일본을 찾았다.
“1991년 일본에 갔을 때 이다카 하루미치라는 친구의 집에 묵었는데 저를 정말 잘 대해줬어요. 그게 고마워서 떠나기 전에 편지를 써서 통역에게 읽어달라고 했는데 그 친구네 부부가 그 부분에 감동했던 것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선 그 친구 애들한테 옷도 선물로 보냈고요. 그 친구랑 서로 집도 오가는 사이가 됐는데 그때 많이 배웠죠. 시클라멘을 처음 키울 때 돼지 똥과 소똥을 비료로 줬는데 꽃이 다 죽어버린 거예요. 그걸 그 친구한테 이야기했더니 돼지 똥을 비료로 주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조금씩 배운 게 큰 도움이 됐어요."
1년에 꽃 화분 30만개 파는 시클라멘 명인
◆꽃 재배 노하우 전수

일본 농민들에게 배운 노하우와 채 대표의 연구개발 노력 덕분에 농장은 빠르게 자리를 잡는다. 2000년대 초반 채 대표가 키운 시클라멘 화분은 개당 4000원가량에 서울 양재동 화훼시장에서 낙찰됐다. 다른 농가의 낙찰가가 1500원 내외였다. 2000년에엔 일본에 처음으로 시클라멘 1700본을 수출했다.

앞선 재배 기술로 다른 농가들보다 높은 수익을 거두던 2000년경 채 대표는 또 다시 새로운 결심을 한다. 자신의 재배기술을 다른 농가들에 무료로 전수하기로 마음먹는다. ‘경기도 시클라멘 연구회’를 꾸린 뒤 회장을 맡아 재배 노하우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 화훼 전문가를 매년 두 차례 초청해 농민들에게 재배기술을 교육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연구회의 연구 성과와 현장 재배 경험을 담은 ‘시클라멘 재배 및 육종기술’이란 책을 2005년 펴내기도 했다. 모두 3000부를 찍어 전국의 시클라멘 농가와 농업 기관에 전달했다.

“화훼농가들이 잘 되려면 전체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야 비싸게 받고 팔았지만 다른 농민들이 계속 1500원짜리 시클라멘을 내놓으면 언젠가 제 꽃값도 내려갈 수밖에 없잖아요. 다른 농민들이 키우는 꽃의 품질을 높여서 다른 농민들도 4500원을 받고 팔 수 있게 하는 게 화훼업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
1년에 꽃 화분 30만개 파는 시클라멘 명인
◆딸과 함께 하는 농장 운영

채 대표는 2002년부터 딸 희영 씨와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이 일궈온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 화훼과에 진학한 희영 씨는 졸업 이후 줄곧 농장에서 일하며 채 대표를 도왔다. 지금은 자녀 양육을 위해 잠시 농장 일을 쉬고 있지만 가업을 물려받을 자식이 있어 채 대표는 든든하다고 했다.

“농사로 돈 많이 번 사람들 정말 많아요. 그런데 자신의 성공 비결, 실패 극복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실패 극복기를 더 그래요. 제가 명인으로 뽑힐 수 있었던 건 다른 사람들과 제 경험을 있는 그대로 나누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파주=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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