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제적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그룹 시스템통합(SI) 업체 한화S&C를 분할하고 지분 49%를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매각하기로 했다.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한화S&C의 정보기술(IT) 서비스 사업을 물적 분할해 한화S&C IT서비스사업부(가칭)를 신설하고 지분 49%를 매각한다. 대형 글로벌 PEF 10여 곳에만 투자안내문(IM)을 보내는 제한적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서다. 지난달 25일 예비입찰에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TPG, 베인캐피털, CVC캐피털,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 베어링PEA 등 6~7곳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지분 49%의 매각 가격은 2000억~3000억원으로 예상된다.
한화S&C는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지분 50%를, 차남 동원씨와 삼남 동선씨가 각각 25%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한화건설-한화생명으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큰 줄기에서는 빠져나와 있다. 대신 2014년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를 사들인 ‘삼성-한화 빅딜’에 참여해 한화S&C-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로 이어지는 별개의 지배구조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한화그룹 승계구도의 핵심이자 미니 지주회사로 불리기도 한다.

사업적으로는 그룹 내 시스템통합, 관리 및 컨설팅, 소프트웨어 개발, 네트워크 구축 등을 전담하는 회사여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회사이기도 하다. 한화S&C의 지난해 매출(3642억원) 가운데 내부거래 물량(2570억원) 비중이 70.5%에 달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려면 IT서비스사업부의 내부거래 비중을 12% 밑으로 낮추거나 보유 지분을 20%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4년 도입한 ‘대기업집단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제도(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의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을 가진 계열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줄 경우(내부 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이상 또는 연매출에서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이 12% 이상) 총수 일가까지 사법 처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화그룹은 올초부터 해소 방안을 고심해 왔다. 다른 계열사와 합병시켜 지분율을 떨어뜨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화S&C는 오너가(家) 회사라는 점이 문제였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처럼 ‘한화S&C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여 합병비율을 산정, 오너가의 지배력을 높였다’는 오해를 받을 우려 때문이다.

경영권 없는 지분 49%를 팔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구설을 피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글로벌 PEF 간 경쟁 입찰을 통해 시장 가격을 만들어두면 향후 한화S&C IT서비스사업부를 상장시키거나 합병할 때 논란의 소지를 차단할 수 있어서다.

이번 지분 매각 이후에도 보유 지분을 20% 밑으로 낮춰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화그룹은 IT 관련 계열사와 합병한 뒤 합병회사를 상장시키거나 한화S&C IT서비스사업부를 독자적으로 상장시켜 지분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이 보유한 IT 관련 회사로는 한화시스템과 한화테크윈 폐쇄회로TV(CCTV)사업부 등이 있다.

한화S&C IT서비스사업부 지분 매각 거래의 주관사는 씨티그룹마켓글로벌증권이 맡았다. 법률 자문은 법무법인 율촌, 회계 자문은 딜로이트안진이 담당한다.

정영효/정소람/이지훈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