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쓴 사람이 길거리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주황색 프리스비(원반)를 던지는 소녀가 있네요.”

선글라스처럼 생긴 인공지능(AI) 스마트 안경을 쓴 시각장애인이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한 번 쓰다듬자 기기가 눈앞의 장면을 음성으로 설명해 준다. ‘보는(seeing) AI’라고 불리는 이 기기를 개발한 사킵 샤이크는 시각장애인이다. 7세 때 시력을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입사해 프로그래머로 10여 년간 근무했다. 샤이크는 “AI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AI가 인간의 ‘눈’과 ‘귀’를 대신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장애인을 돕는 역할을 넘어 감정을 공유하며 인간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AI 기술에 대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애플 구글 MS 아마존 페이스북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스마트홈, 금융, 교통, 의학 등에 특화한 AI 서비스를 개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메라만 비추면 정보가 주르륵

구글은 지난달 미국 마운틴뷰에서 열린 자사 개발자회의(I/O)에서 AI 기술을 담은 ‘구글렌즈’ 서비스를 소개했다. 구글렌즈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잡힌 이미지를 인식하고 관련된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멋진 레스토랑을 발견해 간판을 찍으면 주요 메뉴와 사람들의 평가를 보여준다. 와이파이 공유기에 붙어 있는 라벨을 찍기만 하면 알아서 비밀번호를 입력해 스마트폰을 공유기에 연결해 주기도 한다.

구글렌즈가 인간의 눈과 손이라면 AI 음성비서 ‘구글 어시스턴트’는 입과 귀의 역할을 한다. 이용자의 명령에 따른 음식 주문은 기본이고, 사용자와의 대화 데이터가 쌓이면 취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세상은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 바뀌고 있다”며 “우리의 모든 서비스와 제품에 AI를 접목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감정까지 읽는 AI

AI는 사람의 감정까지 읽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MS의 AI 스마트 안경은 대화 상대의 입 모양이나 표정을 읽어 감정을 추측할 수 있다. 성별과 나이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물의 형태와 종류, 문서의 글자 모양 등을 해석해 음성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구글의 AI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옥스퍼드대와 함께 ‘독순술’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사람의 입술만 보고 무슨 말인지 해석해 낸다. 5000시간 이상 BBC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입 모양을 읽는 방법을 학습했다. 딥마인드 개발자들은 AI 독순술을 청각장애인의 대화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사람 표정을 인식하는 기술을 보유한 AI 회사 이모션트를 인수했다. 이모션트 기술은 광고나 진열 상품을 보는 소비자의 반응을 분석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 맞춤형 광고도 가능하다. 말하지 못하는 환자의 아픔을 의사가 파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 선점 나선 글로벌 기업들

AI는 전자·IT, 금융, 의료,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AI 플랫폼을 선점해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려는 이유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인터넷·전자상거래 회사들은 엄청난 양의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게 강점이다. 아마존 ‘에코’와 구글 ‘구글홈’ 등에 이어 애플(홈팟), MS·하만카돈(인보크) 등이 ‘AI 스피커’ 경쟁에 뛰어든 것도 소비자의 음성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다.

페이스북은 AI 챗봇(대화형 메신저 로봇)을 통해 사용자의 취향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AI는 앞으로 10년간 페이스북 기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항공, 에너지, 헬스케어 등에 AI 기술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짐 파울러 GE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이제는 공장과 서비스에 머신러닝(기계학습)과 같은 AI 기술을 적용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인공지능(AI)과 같이 컴퓨터에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것을 염려한다. 기술은 선(善)을 위한 힘이며 품위와 친절이 녹아 있어야 한다.” 지난 9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졸업 축사에서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