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에서 선정된 판사 대표 98명이 어제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열었다. 2009년 소위 ‘촛불 재판’ 때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 이후 8년 만에 판사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발단은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 2월 ‘사법독립과 법관인사 제도에 관한 설문조사’와 함께 학술행사를 준비한 것이었다. 법원행정처 간부가 행사 축소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고,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전국 규모의 법관회의로 이어졌다.

외형적으로 이번 회의는 대법원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평가, 소위 ‘법관 블랙리스트’ 규명 및 조사,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는 자리로 돼 있다. 하지만 법원 내 사정을 들어보면 그렇게 단순한 상황이 아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 개혁 논의의 중심에 선 일부 ‘진보 성향’ 판사들에 대한 법원 내 우려도 있다.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법원행정처에 ‘엘리트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고 들린다. 사법부 내 이런 갈등 요인들이 새 정부 출범 시기와 겹쳐 더 크게 불거졌다는 분석도 있다.

원인과 배경이 무엇이든 최고의 전문가그룹이면서 업(業)의 특성상 ‘독립적 존재’가 돼야 할 판사들까지 단체행동에 나서나 하는 점이 국민들 걱정이다. 현행 법원조직법이나 대법원 규칙에는 전국의 판사들이 모여 회의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미국(연방사법회의)과 독일(법관협회)에서 비슷한 법관 회의체가 있다지만 기능에서 차이가 나고 사법적 문화와 전통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도 어렵다.

대법원을 중심으로 신중한 공론을 거쳐 법규에 담는다면 전국법관회의를 상설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법원장에 집중된 법관 인사와 사법 행정에 대한 법원 내 소통기구로의 활용 여부도 사법부 지혜에 달렸다. 다만 ‘판사 노조까지 만들어지나’라는 외부의 우려는 새길 필요가 있다. 판사들이 개별 법관의 인사와 처우, 일반적인 법원 행정에 단체로 관여할 경우 사실상 노조라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법원과 판사는 조직과 업무 특성상 집단적 행동과는 맞지 않는다. 재판의 독립, 사법부 독립이라는 대원칙에서도 그렇다. ‘정치’를 배제해 불필요한 오해를 막는 것도 필요하다. 판사들의 집단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