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정점에는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가업을 승계하거나 직접 창업해 기업을 경영하는 CEO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까지 차근차근 올라간 사람이다. 이들의 궤적은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의 표본으로 많은 직장인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이력서에는 남다른 뭔가가 있을까.

[책마을] '직장인의 꿈' 이룬 사람들, 그들은 무엇이 특별했나
미국 저술가 피터 반햄은 《CEO의 이력서》에서 유명 기업 CEO 20명을 인터뷰해 이런 의문에 답을 제시한다. 반햄은 이들 CEO의 집과 사무실 등을 방문하고 때로는 출장지에까지 동행하며 밀착 취재했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 번도 CEO가 되려고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서 고난에 맞닥뜨렸고, 한자리 차지하려는 욕심을 내기보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왔다.

경영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의 오릿 가디쉬 회장은 컨설턴트이던 1990년께 회사가 경영위기에 빠졌을 때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걸 보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다른 컨설팅회사와 차별화되는 베인앤컴퍼니의 ‘고객지향주의적 경영철학’이 옳은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직장인이 연봉이나 업무환경을 보고 회사를 선택하는 것과 다른 기준이었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회사는 위기에서 빠져나와 다시 성장했고, 가디쉬 회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CEO 자리에 올랐다.

인도 정보기술(IT)업체 인포시스의 고팔라 크리슈난 회장은 동료들과 함께 창업한 뒤 회사가 성장 궤도에 올랐을 때 매각 제의를 받았다. 경제적으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그는 동료들을 설득해 이 제의를 거절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자신의 손으로 회사를 일궈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무분별한 확장을 자제하고 내실을 기하며 업계에서 존재감을 확립하는 데 집중했다. 인포시스는 1999년 인도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등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마냥 ‘일벌레’였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사생활도 자신의 커리어를 다루듯 세심하게 챙겼다. 경영컨설팅회사 딜로이트의 배리 샐즈버그 CEO는 여러 번 해외 지사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아픈 아들의 치료 때문에 번번이 거절했다. 셀즈버그는 “삶의 균형을 생각하면 경력에서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가족의 울타리는 그가 이후 험난한 직장생활을 이겨내는 버팀목이 됐기 때문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