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어느 염색공장 근로자의  한숨
경기도 반월염색단지의 50대 초반 근로자 L씨는 요즘 종종 밤잠을 설친다. 20여 년째 장화를 신고 눅눅한 염색공장에서 일하는 그의 월급은 약 350만원. 주중 맞교대와 주말근무를 통해 땀흘린 대가다. 이 돈으로 세 명의 가족을 부양한다.

걱정이 늘어난 것은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 때문이다. ‘주말 근무가 줄어들면 놀러다니고 좋은 것 아니냐’는 친구들의 시샘과는 달리 월급이 20~30%가량 깎일 것을 생각하면 속이 탄다.

근로시간 단축 후 회사가 종전 월급 수준을 보장해주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당장 자녀의 교육과 결혼 준비가 타격을 받는다. 그가 몸담은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 염색업체 중에는 경영난에 허덕이며 공장을 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태풍의 눈' 근로시간 단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체인력을 구할 수도 없다. 염색단지에서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새로 ‘들어오는’ 내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78개 업체가 입주한 반월염색단지에는 약 6700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인력부족률은 평균 10%대에 이른다. 경기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이웃회사 간 인력쟁탈전이 벌어지고 임원들끼리 고성이 오갈 정도다.

정부가 근로시간을 현재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려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 증대를 꾀하기 위해서라지만, 인력을 구하기 힘든 염색업계와는 거리가 있는 얘기다. 이는 주물 도금 열처리 단조 등 뿌리산업도 마찬가지다.

인천의 주물업체 K사는 퇴직자를 대신할 내국 인력 두 명을 1년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의 C사장은 “쇳물을 받아내는 것은 외국인 근로자가 맡더라도 기계작업은 내국인에게 맡겨야 하는 데 단 한 명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K사가 있는 주물단지도 내국인 유입이 끊긴 지 오래다.

중소기업의 생산직 인력난은 수십 년간 지속돼 왔다. 서울 및 인천과 가까운 반월·시화는 그나마 양반이다. 화성 평택 당진 등지는 더욱 심하다. 당진의 K사장은 “적절한 보완책 없이 근로시간 단축과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시대가 도래하면 못 버티는 업체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지금과 같은 불황기엔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며 “이들 문제는 노사자율에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실태조사가 먼저"

경기도 전자부품업체의 L전무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앞서 정확한 실태파악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조치로 인건비 상승 부담은 얼마나 되는지, 대체인력은 있는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지, 개별 기업들이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정확히 한 뒤 점진적으로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업계에 ‘태풍의 눈’으로 다가오고 있다. 두 개의 태풍이 합쳐지면 그 파괴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슈퍼급 태풍’으로 커질 수도 있다고 뿌리기업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집들이 무너진 뒤엔 후회해도 소용없다.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이라도 염색단지 주물공단 도금공장에 가볼 필요가 있다. 산업의 뿌리가 뽑히면 일자리라는 열매가 새로 열리기는커녕 기존에 있던 열매마저 땅바닥에 나뒹굴지 모른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