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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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여자 친구와 함께 한강공원을 찾은 직장인 이진호 씨(32)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불협화음’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인근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나들이객들이 각자의 무선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던 것이다. 이씨는 “한강공원을 자주 찾는데 해마다 이런 광경이 늘고 있다”며 “옆 사람과 얘기 나누기도 쉽지 않은 지경”이라고 했다.

◆‘방방’ 뜨는 블루투스 스피커 인기

무선통신 기술인 블루투스를 이용한 스피커가 음향기기 시장의 대세로 부상하면서 소음 분쟁이 늘고 있다. 속속 등장하는 기술 발전 속도를 이용자들의 수용 자세가 따라가지 못해서 나타나는 ‘문화정체’ 현상으로 풀이된다.

기존 스피커 시장은 고가형 오디오 기기와 컴퓨터에 연결하는 사무용 스피커로 양분돼 왔다. 하지만 두 기기 모두 고품질 음악을 간편하게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100% 충족시키지 못한 게 사실이다. 블루투스는 ‘가격 대비 높은 품질’을 앞세워 이 지점을 공략해 인기를 얻고 있다. 값비싼 오디오에 버금가는 음질의 스피커가 저렴하게는 2만~3만원, 고가 사양이라도 20만원 선에 그친다.

무선 스피커의 역습…공원마다 소음 분쟁 '시끌'
전원이 내장돼 있어 이동이 자유로운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직장인 손모씨(25)는 “10만원대 제품을 샀는데 음질이 수백만원대 오디오처럼 느껴져 나들이 갈 때 종종 들고 다니며 친구들과 음악을 듣는다”고 전했다.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국내 블루투스 음향기기 시장은 2014년 782억원에서 작년 1461억원으로 2년 새 두 배로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캠핑이나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요즘 들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솟는 인기 만큼 소음 공해도 ‘방방’

무선 스피커 대중화는 새로운 형태의 소음 공해와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 높은 이동성과 ‘나만의 첨단 맞춤 기기’라는 과시심리가 맞물리며 공공장소에서의 부주의한 사용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음향 애호가들이 집에 설치하는 오디오 감상실은 방음부터 신경쓰지만, 블루투스 스피커는 소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부족하다. 서울 연희동의 원룸에 거주하는 손모씨(24)는 “밤마다 옆집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무선 스피커로 영화를 보고 있더라”며 “음악 가사나 멜로디는 들리지 않더라도 진동이 전달되는 저음은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털어놨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무선 스피커가 평균적으로 내뿜는 최고 음량은 90dB에 달한다. 시끄러운 공장 안에서 느껴지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이다.

야외 등 공공장소에서의 부주의한 사용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연남동 경의선 숲길공원 인근 아파트에 사는 최모씨(26)는 “자려고 누웠는데 시끄러워 밖을 보니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떼창’을 하고 있더라”며 황당해했다.

기술 발전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수용 자세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겠지만 타인의 평화롭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모든 종류의 소음 공해는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 의식이 부족해 생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