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마리안느와 마가렛, 서서평…
소록도에 평생을 바친 두 오스트리아 수녀 얘기 ‘마리안느와 마가렛’, 고아와 병자들의 어머니로 살다 이 땅에 뼈를 묻은 미국 선교사 일대기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실화를 다룬 두 편의 영화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몇 안 되는 개봉관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대작 틈새에서 두 달째 롱런하며 관객을 모으고 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그저께 두 수녀의 고국에서도 상영됐다.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6주 만에 관객 10만 명을 넘었다.

40년 넘게 헌신한 '소록도 수녀'

‘소록도 천사’로 불리는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렉(82)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간호대학의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같은 수녀회 소속인 둘은 소록도에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5년 정도 일할 생각으로 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이들은 모두가 꺼리는 한센병 환자의 발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약을 발라줬다. 병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했다. 자원봉사자 신분이었기에 봉급도 없었다.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와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의약품을 조달했다. 3평 방에서 지네에 물려가면서도 제 몸 돌보는 건 뒷전이었다. 부러진 빗자루에 테이프를 감아 썼고 죽은 이들의 옷을 수선해 입었다.

그렇게 43년을 헌신하다 건강이 따라주지 않자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작별편지만 남기고 2005년 조용히 떠났다. 그 옛날의 낡은 가방 하나만 들고 돌아간 둘은 수녀원 밖에 머무는 재속회원이어서 일반 가정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 마가렛은 치매와 싸우고 있다. 그런 중에도 지난해 소록도병원 설립 100주년 기념식 때 잠깐 들른 마리안느는 “평생 행복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또 한 사람, 서서평(徐舒平·1880~ 1934)이라는 조선 이름의 독일계 미국 선교사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 그도 조선에 의료진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1912년 간호선교사로 자원했다. 54세로 작고할 때까지 22년간 그는 일제하 조선에 모든 것을 주고 뼈까지 묻었다. 옥양목 저고리와 검정치마, 고무신 차림으로 고아 14명과 오갈 데 없는 과부 38명을 품고 살았다. 광주 제중원 간호사로 일하며 대한간호협회 전신인 조선간호부회를 세우고 한국 첫 여성 신학교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도 설립했다.

조선땅에 묻힌 검정치마 선교사

1934년 과로와 영양실조로 숨졌을 때 그의 유품은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 담요 한 장이 전부였다. 시신마저 의학용으로 기증했다. 암울한 조선 사회에 한 줄기 빛과 소금이 됐던 그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 잊혔다가 최근에야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미국 장로교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선교사 7인’ 중 유일한 한국 파견 선교사로서 그의 삶은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 《조선을 섬긴 행복》 등 책으로도 되살아났다.

이들뿐인가. 연세대를 설립한 언더우드 부부,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제중원 설립자 헤론, 조선의 독립운동까지 도운 헐버트….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봉사 덕분에 우리는 변방의 최빈국에서 세계 7대 무역국가로 성장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다행히 소록도성당과 고흥군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월 1004달러씩의 연금을 보낸다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서서평을 기리는 행사도 이어질 모양이다. 이를 마중물 삼아 이 땅에 뿌린 사랑의 씨앗들이 더 풍성한 꽃을 피우길 기도하는 마음 간절하다.

고두현 논설위원·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