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8대 전자업체들의 분투

[뉴스의 맥] 소니·파나소닉·히타치…자존심 버리고 수익성 얻었다
일본 8대 전자기업들의 변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변신의 화두는 핵심역량에 중점을 둔 체질 개선과 사업 재편이다. 과감한 구조 조정도 이뤄지고 있다. 이미 소니 등 일부 기업들은 성공의 궤도에 올라섰다고 선언했다. 반면 도시바나 샤프 등은 아직도 재기를 하지 못한 채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전자왕국이면서 한때 세계의 전자업계를 뒤흔들었던 일본이다. 과연 일본 전자업체들은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노키아, 모토로라 등 많은 세계의 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소니 히타치 도시바 NEC 파나소닉 미쓰비시전기 샤프 후지쓰 등 8개 일본 전자업체들의 2017년 3월 결산기(2016년 4월~2017년 3월) 매출은 총 44조4432억엔이었다. 2013년 결산기에 비해 0.18%밖에 늘지 않았다. 매출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미쓰비시전기로 이 기간 동안 고작 18.82% 증가했다. 소니도 1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파나소닉(0.56%)과 히타치(1.34%) 증가율은 1% 안팎에 불과했다. 외형이 늘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 증가율은 71.8%에 달했다. 그동안 적자에 허덕였던 샤프도 이번 회계연도엔 영업 흑자로 돌아섰다. 파나소닉(72%), 히타치(39.2%) 등의 영업이익도 크게 늘었다. 소니도 25.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부정회계로 문제를 일으켰던 도시바도 영업이익은 193.5%나 증가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의 매출은 4년 전보다 늘지 않았지만 영업이익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들 기업이 성장성보다 수익성에 중점을 둔 경영 전략으로 체질 개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뉴스의 맥] 소니·파나소닉·히타치…자존심 버리고 수익성 얻었다
핵심역량 찾아 사업재편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부사장은 최근 실적발표에서 올해를 ‘소니 부활의 해’로 선언했다. 한때 혁신의 대명사이면서 일본 전자산업의 아이콘이었던 소니였지만 레드오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파산 우려까지 낳았던 기업이다. 하지만 2011년부터 사업을 재편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소니는 올해 3월 끝난 2016년 결산기에서 2887억엔(약 2조927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소니의 이 같은 부활을 견인한 것은 게임 사업과 금융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미지 센서도 효자 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기존의 스마트폰 이미지 센서는 물론 2014년 개발한 자동차 카메라용 이미지 센서가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는 스마트폰 업체들이 선보이는 듀얼 카메라에 장착해 빛을 발하고 있다. 자동차 이미지 센서는 기존 자동차 카메라 센서에 비해 감도가 10배나 높아 캄캄한 곳에서도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소니는 2020년까지 기업 비중에서 최대 20%로 늘릴 예정이다.

파나소닉도 소니처럼 부품에 승부를 걸었다. 자동차 카메라 센서와 초음파 센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동차부품산업의 핵심인 조명용 램프나 2차전지 관련 부품 등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파나소닉이 미국 테슬라 차량에 공급하는 2차전지 등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종합 전자업체였던 히타치는 산업전기나 중전기 IT 인프라 사업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개인과 기업 간 거래(B2C) 상품에서 기업 간 거래(B2B)로 바꿨다. 돈을 벌지 못하는 사업에서 빠르게 철수하는 것을 체득한 히타치다. 2008년 경영 위기 이후 가장 빨리 사업을 재편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건 이제 기업 문화로 자리잡았다. 미쓰비시전기도 이익률이 높은 공장 자동화사업에 주력 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 역량을 따로 갖고 있지 못했던 도시바 샤프 NEC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다. 1등이 아니고선 견딜 수 없는 레드오션의 전자 생태계를 벗어나 자동차업종까지 기웃거리는 마당이다. 이제 이들은 부품업체라고 불리는 걸 결코 꺼리지 않는다.

정작 자동차 부품 판매로 호황을 누리는 전자부품업체들은 부지기수다. 초소형 모터업체인 니혼덴산(日本電産)은 매출이 1조원을 넘는다. TDK나 알프스전기, 무라타제작소 등 대표 전자 부품 업체들도 자동차 시장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자동차 업종은 상대적으로 영업이익률이 높다. 웬만한 자동차 기업들은 평균 5% 이상이다. 많은 공정에서 자동화가 진척됐으며 플랫폼의 구조 변환도 자주 일어나지 않는 구조다. 부품회사들의 이익률도 그만큼 된다. 시장 상황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차를 기점으로 하는 새로운 생태계에 쉽게 접할 수 있다.

분업 중시하는 일본식 경영 반성

일본 기업들이 성장성을 포기하고 수익성으로 돌아선 건 그동안 일본 전자업계 경영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일본 전자산업의 경쟁력 저하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생산성 저하나 일본식 경영의 한계 등이 많이 지적됐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전자산업 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일본은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가공 생산과 가공무역에 집중한 산업 형태였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등장과 동종 업체 간 제휴와 분업의 범위가 확대되는 수평 분업화 시대가 찾아왔다. 조립이나 가공을 통해 완제품을 만드는 일본형은 부품들을 통합하거나 조합하는 모듈형에선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모듈형을 강점으로 하는 한국 중국 등 신흥국이 강력한 경쟁국으로 대두돼 일본이 급속히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의 맞수, 독일이라는 분석도

아직 일본 8개 전자업체 매출은 삼성전자의 두 배가 채 되지 않는다. 영업이익률도 떨어진다. 일본 전자업체 중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다는 미쓰비시는 지난해 6.37%였다. 삼성전자(14.49%)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인정해 ‘종합우승’보다 ‘종목우승’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본의 강점인 부품 기술과 소재 기술 등을 부각하려는 전략이다. 창조적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에 중점을 두려는 방향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맞수가 미국보다 오히려 독일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취약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일본 전기산업》의 저자 이즈미다 료스케는 “결국 일본이 기술만으로 승부를 걸면 안된다”며 “기술을 편집하고 응용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