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18일 “4대 재벌 관련 사안은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겠다”고 재차 공언하자 해당 그룹들은 발언 진의를 파악하느라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알려진 것만큼 재벌 그룹에 강경한 입장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적지 않다. 과거 기자와의 만남에서도 비판과 별개로 그룹 총수나 경영 성과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적이 많았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은 2008년과 올해 두 차례의 특별검사팀 수사를 받으면서 김 후보자가 이끈 경제개혁연대와 가장 많은 공방을 벌인 그룹 중 하나다. 하지만 2013년 7월 수요사장단회의에 김 후보자가 강사로 초청받은 이후 미래전략실 핵심 경영진 등과의 교류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삼성그룹 경영체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 삼성의 강점은 회장의 리더십, 미래전략실의 기획, 전문경영인의 실행 등 삼두마차 체제에서 나왔다”며 “이건희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는 통솔력이 뛰어났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룹 덩치가 커지는 과정에서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미래전략실에 과도한 권한이 쏠린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서는 “대표이사 역할보다는 코디네이터(조정자) 역할을 하는 이사회 의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또 삼성 측이 검토해온 중간지주회사 도입에 대해서도 “투명한 지배구조가 대주주의 지배력 남용을 차단할 수 있다”며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내비쳤다. “현대그룹 가풍에 따라 경영자 수업을 잘 받았으며, 겸손하고 신중한 성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이 세계 5위 자동차 그룹을 일궈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4대 그룹 중 가장 움직임이 더딘 것 같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LG그룹에 대해서는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그룹으로 정부가 가타부타 지적할 게 없다”며 “개별 경영진의 인품이 너무 훌륭하다”고 평했다. 다만 “가족 단위의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SK그룹 경영진과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에 대한 생각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