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계열사 지원했다 배임죄…"적대적 M&A는 막을 수 있어야"
기업그룹의 경우 그룹 전체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해야 할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상법은 기업그룹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그룹 내 한 회사가 부실해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그룹 내의 다른 회사가 자금 대여 등 지원을 하면 지원 주체인 회사의 이사가 상법 및 형법 등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문제에 관한 리딩 케이스는 2012년 7월12일 대법원이 선고한 2009도7435 판결이다.

부실 자회사에 대한 무담보 대출

이 판결의 사건 개요는 이렇다. 피고인 갑은 A그룹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대주주다. A그룹에 속하는 회사 중 A회사가 모(母)회사이고, 그 아래 자(子)회사로 B회사(A회사가 B회사 주식을 43.43% 소유할 뿐이므로 상법상 자회사(50% 초과)는 아니어서 상법상 주식상호소유제한에는 해당하지 않음)가 있고, B회사의 자회사이자 A회사의 손(孫)회사인 C(B회사가 C회사 주식 92% 소유)가 있다.

그런데 2005년 1월께 갑에 반대하는 주주 을 등이 A회사에 대해 적대적 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갑은 이를 방어하고자 B회사(갑은 B회사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가 40억원을 무담보로 대여하는 형식으로 C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C회사는 이 돈으로 A회사 주식을 매수했다. 이 과정에서 B회사는 C회사에 대해 상당하고도 합리적인 채권회수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C회사는 설립된 지 7개월 정도 된 자본금 30억원의 신생 회사다. 2004년 12월 말 현재 자산 총계 약 83억원, 부채 총계 약 71억원이며 2004년도 하반기 매출 1억8000만원에 당기순손실 17억6300만원의 부실 회사였다.

나아가 C회사는 이전에 A회사 주식을 A회사 직원 주주들로부터 외상으로 인수해 이미 약 80억원의 주식매수대금 채무까지 부담하고 있었다(다만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당시에는 80억원에 대해서는 변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 B회사의 대표이사인 피고인 갑이 B회사 자금 40억원을 C회사에 무담보로 대여하면서도 상당하고도 합리적인 채권회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던 것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이 사건의 쟁점이다.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원심에서는 “배임죄 아니다” 판결

이 사건에서 피고인 갑은 정당한 경영권 방어방법을 동원한 것이고, B회사가 그룹 본부를 통해 C회사가 보유한 A회사 주식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담보를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어 손해 발생 위험도 없기 때문에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A그룹 전체적으로 아무런 손해가 발생한 것이 없다는 점도 논거로 들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2009년 7월10일 선고, 2007노2684 판결)은 피고인 갑의 주장을 대체로 수긍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 갑의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은 경영상의 판단으로 인정하지 않아

그러나 대법원은 “충분한 담보를 제공받는 등 상당하고도 합리적인 채권회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대여해 줬다면 그와 같은 자금 대여는 타인에게 이익을 얻게 하고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행위로 회사에 대해 배임 행위가 된다”며 유죄의 취지로 사건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회사의 이사는 단순히 그것이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임죄의 죄책을 면할 수는 없으며, 이런 이치는 그 타인이 자금 지원 회사의 계열 회사라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 적대적 인수 시도와 다른 주주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피고인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계열사 지원으로 이사가 민·형사 책임을 진 사건이 꽤 많다.

계열사 상호 지원은 인정해야

부실계열회사를 방치하면 그룹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그룹 내 다른 회사까지도 모두 부실에 빠질 위험이 있다. 기업집단은 그 자체의 전략과 목표가 있고, 내부거래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기업집단의 개념을 인정해 계열회사 내에서의 지원 행위는 민·형사 책임 적용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나의 주식회사는 다른 회사로부터도, 대주주로부터도 독립된 하나의 법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법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이 주식회사 제도를 적극 이용하고 있는 이상 그 집단이익이라는 것도 계열회사 각각의 이익과 상충되는 범위에서 상당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개별 법률도 있지만, 배임죄는 그룹 소속 기업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적용되며,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계열회사의 이익과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손해를 감수하고 부실한 계열회사를 지원한 경우 이를 결의한 이사는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 위반 내지 임무를 게을리했으므로 인해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상법 제399조) 또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그룹의 계열회사 지원 방법은 단순 자금 대여, 채무보증, 유상증자 참여, 부동산 저가 매각 등 자산 양수·도, 합병, 분할, 채무 면제, 매입품의 단가 인상, 옵션계약 체결 등이 있다.

많은 나라가 ‘기업그룹 이익’ 인정

해외에는 기업그룹의 개념 및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하는 나라가 많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이른바 ‘로젠블룸 원칙’이 통용된다.

1985년 프랑스 대법원이 기업그룹의 개념 및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한 판결이다. 이와 같이 판결로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하는 국가는 프랑스, 벨기에 외에도 키프로스, 덴마크,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네덜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스페인, 스웨덴, 영국 등이 있다.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는 아예 입법으로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한다.

적대적 M&A에 대항할 수 있어야

물론 독립적 법인격인 B회사 주주의 입장에서는 담보 확보 없이 큰 금액을 대여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여지는 있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 판결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 회사법은 기업그룹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룹의 이익 개념을 인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부실계열회사인 손회사(C회사)를 동원해 A회사의 우호 지분을 확보한 후 적대적 기업 인수에 대항하려 한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실제로 기업그룹 내에 어떤 손해도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서 B회사가 C회사 주식 92%를 소유해 B회사가 C회사를 거의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C로부터 담보를 확보하지 않은 대출이라고 해서 B회사의 대표이사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기업그룹 내의 모든 법인은 각자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형식 논리에 집착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 프랑스에선 '그룹 이익' 인정…"계열사 간 거래 배임죄 아냐"

로젠블룸 사건은 로젠블룸 가족이 지배하는 다수의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통해 상호 지원했는데, 계열사들의 소수 주주가 해당 회사 이사들을 형법상 배임죄로 고발한 사건이다.

법원은 기업집단의 존재는 법률적 정당성을 가지며, 기업집단에서 발생하는 자회사 또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역시 정당한 법률적 권리로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모자회사 및 계열회사 간 지배나 지휘와 같은 영향력 행사는 그룹의 존속과 발전에 유용하며 정당하다는 것, 그리고 계열회사의 경영진은 개별회사에 앞서 그룹 전체의 이익을 고려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해당 기업집단이 확고한 그룹 조직구조와 확고한 그룹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

또 조직 내에서 상호 손실보전시스템이 있어 개별회사에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상호 보상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등의 전제조건이 있다.

프랑스 회사법에서도 기업그룹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판결을 통해 기업그룹의 개념 및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한 점에서 이정표를 제시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준선 <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