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표류기] '스마트폰 탑' 쌓자‥눈맞추자 '우리'
취업준비생 송 모(27)씨는 요즘 술자리에서 빠트리지 않고 하는 행동이 있다. 각자 스마트폰을 모두 거둬 테이블 한 켠에 쌓아놓는 일이다. 이른바 스마트폰 탑 쌓기.

"스마트폰 대신 서로에게 집중 좀 하자"는 취지다. 송씨는 업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임 등 저마다 ‘개인적’일들로 가득한 스마트폰이 사람 사이를 방해한다고 했다. 그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안쓰는게 서로를 배려하는 일”이라며 “친한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해야한다’고 했다. ‘스마트폰 탑쌓기’는 그와 일행에게 스마트폰 중독 예방보다 개인활동 중독 예방을 의미했다.

‘나홀로’가 대세로 떠오른 지금, ‘혼자’임을 부끄러워하던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지나친 개인화로 인한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감 약화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 송 씨가 탑을 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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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혼족’과 ‘자발적 고립’이 뒤섞이는 것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껄끄러운 대인관계, 불필요한 지출 기피로 혼족이 등장했다면, 자발적 고립은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는 현상이다. 혼족이 사회에 자리잡은 만큼, 구성원 간 결집도 줄어드는 점이다.

직장인 심 모(30)씨는 전형적인 혼족이다. 혼밥과 혼술을 즐기고, 혼자 일어나 혼자 잠자리에 든다. 짬이 날때면 친구를 만나 당구 한 판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요즘 그의 걱정은 단골 당구장이 사라지는 일이다. 올해만 동네 당구장 두 군데가 문을 닫았다. 심씨는 함께 ‘할거리’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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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등록.신고체육시설업현황’에 따르면 2007년(1만9527개)부터 꾸준히 증가하던 전국 당구장 수는 2010년 2만5317개에서 2015년 2만1980개로 매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몇 년새 불어닥친 혼족 열풍에 ‘함께’치는 당구장업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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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 사장 김 모(48)씨는 “예전엔 여럿이서 당구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젊은 사람 보기 힘들다”며 “당구뿐 아니라 탁구, 볼링처럼 생활스포츠업종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구뿐 아니라 둘 이상 같이 하는 생활스포츠 업종이 젊은 사람에게 인기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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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서 함께 가던 PC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 속 전국 PC방 수는 2010년 1만9014개에서 2015년 1만2459개로 30%이상 줄었다. 창업 대표 아이템 중 하나로 꼽히던 PC방의 현실이다.

PC방을 찾은 취업준비생 송 모(26)씨는 “혼자 왔지만 게임에 접속해 있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헤드셋을 끼고 실시간으로 게임 속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평일 오후 50좌석 규모 PC방엔 송 씨를 포함해 다섯명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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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사장 김 모(37)씨는 “요즘엔 단체 손님보다 개인 손님이 많다"며 해가 거듭될수록 장사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가게 앞 무인 결제 기기와 라면 조리 기기를 보여주며 “아르바이트생 월급도 부담돼 기계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라 밝혔다.

노래방도 예외가 아니다. 노래방 대표주자는 이제 코인노래방이다. 홀로 마음껏, 값싸게 노래하고픈 1인 가구가 주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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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노래방 수는 2010년(3만5195개)부터 2014년(3만3345개)까지 감소하다가, 2015년(3만4443개)에 들어 다시 증가했다. 전통적 노래방이 사라지는 시기에 코인노래방이 다시 증가하면서 전체 수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 2015~2045년’에 따르면 ‘1인 가구’ 구성비는 2015년 전체 가구유형 중 27.2%에서 2025년 31.9%로 증가했다. 부부와 자녀(24.2%)를 넘어 가장 보편적인 가구형태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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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이제 대세다. 나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혼족’은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미디어도 연일 혼족을 조명한다. 산업은 ‘혼밥’, ‘혼술’, ‘혼영’에 맞춰 변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편의점 매출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 편의점 시장매출은 20조4000억원으로 2015년 17조2000억에서 18.6% 늘어났다. 편의점 베스트셀러 상품인 도시락 진열대만 봐도 혼밥을 권장하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구장, PC방에서 만났던 혼족들은 이렇게 말했다.

“직장생활하다보니 시간이 없어 자연스레 ‘혼족’이 됐어요. 평소엔 혼자지만 주말엔 마음맞는 친구를 만나죠. 근데 요즘엔 친구를 만나도 할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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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오랜 친구들과 모임에서 '스마트폰 탑'을 쌓아보자고 했다. 취준생 송 씨처럼 스마트폰은 잠시 한곳에 모아두고, 어렵게,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에게 좀 더 집중해보자고 말이다.

진솔한 대화의 시작은 눈맞춤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항상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한다"고 가르친 이유다. 눈을 맞춘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에게 집중한다는 뜻이다. 눈을 마주할 때만큼은 보다 진실한 속마음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이다.

"스마트폰 놓고 서로 눈 좀 보자."
"스마트폰 대신 눈 보면서 서로 사는 이야기 좀 하자"
라고 말할 용기.

아무리 혼족이 대세라 해도, 친구는 이 정도 용기쯤은 흔쾌히 받아줄 수 있는 오랜 벗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혼술이 맛난다해도,공든 이 무너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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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표류기’ ?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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