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슬로건, 로고, 캐릭터 등이 ‘행복’ ‘함께’ ‘희망’ 등 특색 없는 단어로 채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투자, 관광객 유치 등에 관심이 높지만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 브랜딩’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4일 한국경제신문이 브랜드 디자인 업체 조슈아로그와 함께 전국 252개 기초자치단체의 도시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 자신만의 고유성이나 특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슬로건이 수두룩했다.

슬로건에 ‘행복’이 포함된 시·군·구만 전국 252개 기초자치단체 중 32곳에 달했다. ‘함께’와 ‘희망’을 슬로건으로 쓰는 지자체도 각각 15곳, 13곳으로 집계됐다. 그러다 보니 ‘꿈과 활력이 넘치는 행복도시 중구’(부산 중구) 등 비슷한 도시 이미지에 갇힌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성이 거의 없다 보니 지자체 간 판박이 슬로건도 수두룩하다. 106㎞ 떨어져 있는 충남 서천과 태안의 슬로건은 ‘행복한 군민 희망찬 서천’ ‘희망찬 태안 행복한 군민’으로 대동소이하다. 시민 공모를 거쳐 2015년 도입한 서울의 ‘I·SEOUL·U’도 의미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뉴욕의 ‘I♥NY’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과 비슷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장들이 임기 중 업적 쌓기 차원에서 브랜드를 대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시 관계자는 “단체장이 바뀌면 전임 단체장이 만든 브랜드를 행사나 공문서 등에서 뺀다”고 했다. 200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만든 캐릭터 ‘해치’는 2011년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때 광화문광장에 ‘해치 마당’이 설치되고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됐지만 지금 서울에서 눈에 띄는 해치의 흔적은 택시 겉면에 붙은 해치 스티커 정도다.

우수 사례도 있다. 맑은 공기와 탁 트인 바다 등 깨끗한 자연환경이 트레이드 마크인 전남 완도는 ‘건강의 섬 완도’라는 슬로건으로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민요 ‘아리랑’ 고장인 강원 정선의 ‘아리아리 정선’도 차별화된 슬로건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구마모토현이 만든 지역 캐릭터 ‘구마몬’도 브랜딩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아시아 전체에 각인시킨 성공 사례다. 최영호 조슈아로그 이사는 “자연환경이나 역사적 특성, 문화적 매력, 행정 서비스 등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 좋은 도시 브랜드”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