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된 '댓글'…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대학생 A씨는 모바일로 기사를 볼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기사를 쓱 훑고 나서 곧장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베댓(베스트댓글)’ 읽기다. 여론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자신도 생각을 가다듬어 댓글을 단다. 드라마와 웹툰을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OCN의 드라마 ‘보이스’를 본 다음 CJ E&M의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 ‘티빙’에 들어간다. ‘보이스’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코멘터리쇼 보이스톡’ 방송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다. 먼저 채팅방에서 사람들이 올리는 댓글을 보고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는다. “이번 회는 복선이 잘 깔려 있어서 재밌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이 많은데 수위를 조금 낮췄으면 좋겠네요.”

댓글이 콘텐츠의 왝더독(Wag the dog)이 되고 있다. 왝더독은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뜻. 작은 부분이 큰 흐름을 바꿔놓거나 주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은 이제 단순히 정보를 얻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사를 볼 땐 댓글을 빠르게 스크롤하며 반응을 살핀다. 방송과 웹툰 등 콘텐츠를 소비할 때에도 감상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댓글을 쓰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댓글을 통한 ‘해석’으로 콘텐츠 이용의 끝맺음을 하는 것이다. 이젠 더 나아가 콘텐츠 방향까지 결정하고 있다.
OCN 드라마 ‘보이스’를 보고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는 코멘터리 방송 ‘코멘터리쇼 보이스톡’. CJ E&M 제공
OCN 드라마 ‘보이스’를 보고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는 코멘터리 방송 ‘코멘터리쇼 보이스톡’. CJ E&M 제공
댓글 열풍은 ‘베댓뽕’ ‘댓글리케이션’ 등 댓글 관련 신조어로도 알 수 있다. 베댓뽕은 베스트 댓글로 뽑혀 기분이 좋은 상태, 댓글리케이션은 댓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댓 되는 법’도 인기 검색어 중 하나다.

특별히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닌데 네티즌은 왜 시간을 쪼개 댓글을 달까. 댓글은 ‘뒷담화’와 성격이 비슷하다. 대중은 뒷담화를 통해 꼭 비난하지는 않더라도 콘텐츠와 사건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뒷담화의 형식만으론 공론화하기 어려웠다. 콘텐츠와 사건들은 일방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될 뿐이었다. 댓글은 뒷담화와 달리 빠르게 확산되면서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막강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콘텐츠 공급자와 수요자의 불균형은 이를 통해 해소되기 시작했다.

댓글이 만들어낸 콘텐츠 성과는 다양하다. 1인 방송이 대표적이다. 소통이 필수인 1인 방송은 네티즌의 댓글이 있었기 때문에 생존 자체가 가능했다. ‘코멘터리쇼 보이스톡’과 같은 코멘터리 방송의 등장도 드라마란 하나의 콘텐츠에 댓글 콘텐츠가 따로 파생된 사례다. 시로 댓글을 써서 이름을 알린 ‘댓글시인’ 제페토와 같은 인물들도 등장했다.

최근엔 콘텐츠 시장의 플레이어들을 걸러내는 역할도 맡고 있다. Mnet의 ‘고등래퍼’ 등 일반인이 출연한 방송에선 이들의 자격을 검증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하차까지 이끌어낸다. 과거 부적절한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제작자에게 의견을 전달한다. 이 같은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면 콘텐츠는 쉽게 외면당한다. 특히 먼저 만들어진 사전제작 작품들은 네티즌의 의견을 즉각 수용하지 못해 역풍을 맞기도 한다.

익명성에 숨어 악플을 다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 네티즌이 불러일으키는 왝더독 현상은 이를 뛰어넘어 콘텐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언제나 우위에 있던 콘텐츠 공급자의 태도가 변해야 하는 이유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의 저자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조나 버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대중을 끌어모을 가장 좋은 수단은 대중이다. 이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라. 장점만 취하며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