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더 많아 매달 최저 생계비를 뺀 소득으로 부채 원리금을 갚을 수 없는, 이른바 한계가구가 금융부채를 진 가구의 20%에 이른다는 보도다.

가계부채가 한국판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스러운 보도다. 물론 금리 인상에 따라 이자 부담 증가, 환율 변동과 자본 유출입 문제 등의 금융시장 불안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지금의 저금리가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문제는 피할 수 없고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이자율이란 사람들이 현재의 자원과 미래의 자원 간 중요도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간선호율이다. 예를 들면 오늘(내일)의 100만원이 내일(오늘)의 100만원에 대해 할증(할인)되는 시간의 비용이다.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시장 이자율은 시간선호율에 접근하고 경제는 잘 돌아간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 목적으로 통화 공급을 늘려 장기간 저금리 정책을 취하면 두 이자율 간에는 괴리가 생기고 경제의 소비구조와 생산구조가 어긋나 위기에 봉착한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저금리 정책의 결과였고 이후의 양적완화 정책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이 금융위기의 원인이었고 이후 10여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불황도 저금리 정책의 결과로 인식된 적이 없다. 지금 당면한 가계 부채의 급증 현상도 불황의 여파라고 두루뭉술하게 인식할 뿐 저금리 정책이 낳은 결과의 하나라고 인식되지는 않는다. “비 올 때 우산을 빼앗지 말라”는 정부의 강압적 권고도 부채 증가에 한몫했다.

이유야 어쨌든 정작 중요한 사실은 빚은 당사자가 스스로 갚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즉 생활이 어렵더라도 부족한 돈을 더 아껴 써야 하고 또 더 많이 벌어 빚을 갚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편승한 불가피한 생계형 부채라는 언설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정부의 가난 구제책이 성공한 예는 없다.

근로자의 경우에는 임금을 더 많이 주는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주체가 바로 기업이며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자본가·기업가들이다. 자본가·기업가란 미래의 시장 상황을 예측하고 새로운 이윤 기회를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일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 무기는 남보다 기민하게 판단하고 빨리 움직이는 행동력이다. 그런데 탄핵 정국에 휘말려 이런 자본가·기업가들의 손발이 묶여 있으니 새로운 이윤 기회를 만들기는커녕 현상 유지도 어려울 판이다. 위법 사항에는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줄이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재벌개혁이지만 무엇을 왜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인지는 언제나 모호하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돈 많이 버는 집단이 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게 산다는 사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본을 축적해 단기간에 다량의 소비재를 공급함으로써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낳아 삶을 영위토록 하는 재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계부채를 비롯한 빈곤은 일자리 부족과 충분하지 못한 임금의 문제다. 사람들로 하여금 공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무책임을 조장하는 정부의 가난 구제 정책은 해결책이 아니다. 성공한 적도 없다. 개인 자선에도 한계가 있다. 빈곤 탈출의 출발점이 되는 일자리와 임금 문제는 사업 기회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자본가·기업가들이 자유롭고 기민하게 행동할 수 있을 때 더 잘 해결된다.

김영용 < 전남대 명예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