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매주 수요일은 가정의 날? 초저녁부터 붙잡혀 회식하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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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만 모르는 우리의 출퇴근 현실
칼퇴근만 하면 뭐하나~침대 눕기 직전까지 '카톡 야근' ㅠㅠ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라고?…정시퇴근만 해도 죄인 취급
회사서 무조건 야근금지 명령, 업무량은 그대로…더 괴로워
출퇴근 시간이 사실상 '성적표'…작년보다 퇴근 1시간 늦어져
칼퇴근만 하면 뭐하나~침대 눕기 직전까지 '카톡 야근' ㅠㅠ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라고?…정시퇴근만 해도 죄인 취급
회사서 무조건 야근금지 명령, 업무량은 그대로…더 괴로워
출퇴근 시간이 사실상 '성적표'…작년보다 퇴근 1시간 늦어져
“야근이 로또라면 난 이미 억만장자라네.”(양경수 작가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중)
한국 직장인들은 피곤하다. 야근과 주말 근무의 굴레 속에서 얻은 ‘만성피로’ 탓이다.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대선주자들은 직장인 표를 잡겠다며 ‘칼퇴근법’,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의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다.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한 처방으로 ‘금요일 4시 퇴근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월~목요일 30분씩 일을 더 하고, 금요일엔 오후 4시에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는 것. 일본이 소비 진작을 위해 지난달 24일 시작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캠페인을 벤치마킹했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모르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직원들 퇴근시간까지 순위 매겨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 정모 사원은 퇴근시간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후 5시 퇴근도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 분위기였지만, 올해 초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자료가 모든 걸 바꿔놨다. 회사에서 지난해 부서별·개인별 출퇴근시간과 하루 평균 근무시간 등의 데이터를 공개한 것. 자료엔 1등부터 꼴등까지 근무시간 순위가 매겨져 있었다. “회사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직원들의 출퇴근시간 ‘성적표’를 매긴 셈이죠. 퇴근이 빠르거나 평균 근무시간이 적은 부서장이나 직원들이 순식간에 공적이 됐습니다.”
이후 자기 할 일을 다 끝내도 기록을 의식해 눈치를 보고, 퇴근을 안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정씨의 퇴근시간도 1시간 이상 늦어졌다. 정씨는 “회사가 새로운 시장 진출 전략 등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내놓는 대신 치졸한 발상에만 골몰하는 것 같아 슬퍼진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최 대리(30)는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이 차라리 없었으면 싶다. 그의 회사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음악과 함께 “업무를 마감하고 가정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1주일에 한 번 있는 ‘칼퇴의 날’이다. 문제는 술을 좋아하는 부장 탓에 이날이 ‘회식의 날’이 돼버린 것. 대놓고 회식을 하자고 얘기하진 않지만 “별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고 갈까”라고 한마디 던지는 부장의 제안을 좀처럼 뿌리치기 어렵다. “임신한 사원이나 퇴근 뒤 영어학원에 다니는 이 대리만 빼고는 가정의 날은 그저 ‘평소보다 빨리 회식을 시작하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강제 셧다운제? 불 켜고 야근해요
최근 근무환경 개선을 이유로 ‘야근 금지령’을 내리는 회사가 늘고 있다. 야근 금지 제도로는 △일정 시간 이후 사무실 PC가 꺼지는 셧다운제 △사무실 불이 꺼지는 소등제 △야근이 많은 부서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시스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꼼수’를 늘릴 뿐이다. 모 전자업체는 야근으로 유명하다. ‘초창기 임직원들은 야전침대에서 자고 1주일에 한 번 집에 옷 갈아입으러 갔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제품 개발이 임무인 공모 책임연구원은 신제품 개발을 마쳐야 하는 연말이면 상시적으로 야근, 주말 근무를 한다. 공 책임뿐 아니라 같은 팀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는 기업문화를 젊게, 창의적으로 바꾸겠다며 주말 출입과 야근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출입카드 기록을 분석해 인사팀이 경고장을 날렸다. 이후 공 책임과 팀원, 임원은 야근하거나 주말에 나와야 할 때 팀원들 출입카드를 모은 뒤 돌려쓰고 있다. 경고를 받지 않을 만큼만 야근, 주말 출근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일은 그대로이고 야근만 못 하게 하니 더 괴롭습니다. 사람을 충원해주든지, 일을 줄여줘야 정상 근무가 가능한 거 아닙니까.”
PC 셧다운제를 운영하는 기업에 다니는 조모 대리는 “전원이 꺼진 뒤 다시 컴퓨터를 켜려면 연장근무를 신청해야 한다”며 “상사가 부담스러워하는 데다 절차가 귀찮아 컴퓨터의 시간 설정을 바꿔놓고 야근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 모바일게임사는 지난달 13일부터 야근 및 주말 근무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퇴근 후 메신저 등을 통한 업무지시도 금지했다. 서울 구로에 있는 본사 건물은 그 전까지 ‘구로의 등대’라고 불렸다. 개발자들의 잦은 야근으로 밤에도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온다는 이유에서다. 한 개발자는 “1주일에 딱 두 번 출근할 때가 있었는데, 한 번 회사에 출근하면 2박3일간 퇴근 없이 일했기 때문”이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게 될지, 보여주기식 정책에 그칠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보람 따위는 됐으니 수당으로 주세요
일찍 퇴근할 순 있어도 ‘카톡 야근의 덫’을 빠져나올 순 없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여모 차장은 잠들기 전까지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언제 상사에게 메신저가 올지 몰라서다. 업무 특성상 휴일에도 기자들의 전화와 카톡 메시지가 쏟아진다. “프랑스에서는 근무시간 외에 발송된 업무 이메일을 거부하는 ‘접속차단 권리’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우린 언제쯤 그런 제도가 도입될까요?”
야근한 뒤 제대로 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회사는 밤 11시가 넘어 퇴근해야 그나마 교통비라도 준다”며 “밤 10시 반쯤 일이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라도 일찍 퇴근할지, 교통비를 받아 택시를 타고 퇴근할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리는 “그렇게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면 왠지 근무시간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나머지 근무’를 한 느낌이 들어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칼퇴’로 부서 직원들 간 팀워크에 금이 가기도 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홍 대리는 매번 칼같이 퇴근하는 동료들이 못마땅하다. 팀장의 눈치를 보다 퇴근시간을 놓친 자신만 ‘호구’가 되는 것 같아서다. 전화 받기 및 사무실 뒷정리는 주로 마지막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홍 대리 몫이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누군 바쁜 일 없는 줄 아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꼰대’처럼 보일까봐 말은 못 하지만요. 동료가 칼퇴근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고재연/오형주 기자 yeon@hankyung.com
한국 직장인들은 피곤하다. 야근과 주말 근무의 굴레 속에서 얻은 ‘만성피로’ 탓이다.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대선주자들은 직장인 표를 잡겠다며 ‘칼퇴근법’,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의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다.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한 처방으로 ‘금요일 4시 퇴근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월~목요일 30분씩 일을 더 하고, 금요일엔 오후 4시에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는 것. 일본이 소비 진작을 위해 지난달 24일 시작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캠페인을 벤치마킹했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모르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직원들 퇴근시간까지 순위 매겨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 정모 사원은 퇴근시간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후 5시 퇴근도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 분위기였지만, 올해 초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자료가 모든 걸 바꿔놨다. 회사에서 지난해 부서별·개인별 출퇴근시간과 하루 평균 근무시간 등의 데이터를 공개한 것. 자료엔 1등부터 꼴등까지 근무시간 순위가 매겨져 있었다. “회사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직원들의 출퇴근시간 ‘성적표’를 매긴 셈이죠. 퇴근이 빠르거나 평균 근무시간이 적은 부서장이나 직원들이 순식간에 공적이 됐습니다.”
이후 자기 할 일을 다 끝내도 기록을 의식해 눈치를 보고, 퇴근을 안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정씨의 퇴근시간도 1시간 이상 늦어졌다. 정씨는 “회사가 새로운 시장 진출 전략 등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내놓는 대신 치졸한 발상에만 골몰하는 것 같아 슬퍼진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최 대리(30)는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이 차라리 없었으면 싶다. 그의 회사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음악과 함께 “업무를 마감하고 가정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1주일에 한 번 있는 ‘칼퇴의 날’이다. 문제는 술을 좋아하는 부장 탓에 이날이 ‘회식의 날’이 돼버린 것. 대놓고 회식을 하자고 얘기하진 않지만 “별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고 갈까”라고 한마디 던지는 부장의 제안을 좀처럼 뿌리치기 어렵다. “임신한 사원이나 퇴근 뒤 영어학원에 다니는 이 대리만 빼고는 가정의 날은 그저 ‘평소보다 빨리 회식을 시작하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강제 셧다운제? 불 켜고 야근해요
최근 근무환경 개선을 이유로 ‘야근 금지령’을 내리는 회사가 늘고 있다. 야근 금지 제도로는 △일정 시간 이후 사무실 PC가 꺼지는 셧다운제 △사무실 불이 꺼지는 소등제 △야근이 많은 부서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시스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꼼수’를 늘릴 뿐이다. 모 전자업체는 야근으로 유명하다. ‘초창기 임직원들은 야전침대에서 자고 1주일에 한 번 집에 옷 갈아입으러 갔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제품 개발이 임무인 공모 책임연구원은 신제품 개발을 마쳐야 하는 연말이면 상시적으로 야근, 주말 근무를 한다. 공 책임뿐 아니라 같은 팀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는 기업문화를 젊게, 창의적으로 바꾸겠다며 주말 출입과 야근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출입카드 기록을 분석해 인사팀이 경고장을 날렸다. 이후 공 책임과 팀원, 임원은 야근하거나 주말에 나와야 할 때 팀원들 출입카드를 모은 뒤 돌려쓰고 있다. 경고를 받지 않을 만큼만 야근, 주말 출근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일은 그대로이고 야근만 못 하게 하니 더 괴롭습니다. 사람을 충원해주든지, 일을 줄여줘야 정상 근무가 가능한 거 아닙니까.”
PC 셧다운제를 운영하는 기업에 다니는 조모 대리는 “전원이 꺼진 뒤 다시 컴퓨터를 켜려면 연장근무를 신청해야 한다”며 “상사가 부담스러워하는 데다 절차가 귀찮아 컴퓨터의 시간 설정을 바꿔놓고 야근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 모바일게임사는 지난달 13일부터 야근 및 주말 근무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퇴근 후 메신저 등을 통한 업무지시도 금지했다. 서울 구로에 있는 본사 건물은 그 전까지 ‘구로의 등대’라고 불렸다. 개발자들의 잦은 야근으로 밤에도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온다는 이유에서다. 한 개발자는 “1주일에 딱 두 번 출근할 때가 있었는데, 한 번 회사에 출근하면 2박3일간 퇴근 없이 일했기 때문”이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게 될지, 보여주기식 정책에 그칠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보람 따위는 됐으니 수당으로 주세요
일찍 퇴근할 순 있어도 ‘카톡 야근의 덫’을 빠져나올 순 없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여모 차장은 잠들기 전까지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언제 상사에게 메신저가 올지 몰라서다. 업무 특성상 휴일에도 기자들의 전화와 카톡 메시지가 쏟아진다. “프랑스에서는 근무시간 외에 발송된 업무 이메일을 거부하는 ‘접속차단 권리’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우린 언제쯤 그런 제도가 도입될까요?”
야근한 뒤 제대로 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회사는 밤 11시가 넘어 퇴근해야 그나마 교통비라도 준다”며 “밤 10시 반쯤 일이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라도 일찍 퇴근할지, 교통비를 받아 택시를 타고 퇴근할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리는 “그렇게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면 왠지 근무시간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나머지 근무’를 한 느낌이 들어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칼퇴’로 부서 직원들 간 팀워크에 금이 가기도 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홍 대리는 매번 칼같이 퇴근하는 동료들이 못마땅하다. 팀장의 눈치를 보다 퇴근시간을 놓친 자신만 ‘호구’가 되는 것 같아서다. 전화 받기 및 사무실 뒷정리는 주로 마지막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홍 대리 몫이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누군 바쁜 일 없는 줄 아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꼰대’처럼 보일까봐 말은 못 하지만요. 동료가 칼퇴근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고재연/오형주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