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형진 기자
사진 전형진 기자
김성민 씨(가명)는 6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이스라엘의 개막전을 보기 위해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처음 찾았다가 낭패를 당했다. 차를 몰고 경기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주차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척돔 주차장은 경기 관계자와 장애인에 한해서만 입장 가능했다. 그가 인근 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고 고척돔에 들어섰을 땐 이미 3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날 경기는 오후 10시를 훌쩍 넘겨 연장 10회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김 씨는 끝까지 보지 못하고 9회가 시작할 때 자리를 떴다. 그가 주차한 곳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만의 야구장 나들이에 들떴던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볼 걸 그랬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WBC 1라운드가 열려 전국에서 야구팬 1만5000여명이 몰렸지만 고척돔은 손님맞이 준비가 안 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제대회를 유치하고도 주차 공간 등 교통 문제 해소는커녕 이용객들의 양해만 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입문이 막혀 있는 고척돔 주차장. 사진 전형진 기자
출입문이 막혀 있는 고척돔 주차장. 사진 전형진 기자
경기장에 비해 소규모라는 지적을 받아오던 고척돔 주차장은 이날 경기에선 개방조차 하지 않았다. 경기장 직원들은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을 막아세우며 민영주차장 이용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들이 나눠준 고척돔 인근 민영주차장 목록과 약도를 받아든 이용객들은 이마저도 부실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쇄물에 나온 A유통단지 주차장은 오후 7시에 문을 닫아 안내의 실효성이 없었다. 경기가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척돔을 처음 찾은 강상국 씨는 “야구를 30분만 보라는 소리냐”면서 “대책 없이 안내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B상가는 고척돔과 1.2km 떨어져 있어 도보로 20분에 가까웠다.

가장 가까운 C마트는 주소가 잘못 기재돼 내비게이션에 잡히지 않았다. 도로명주소 숫자 한 자리가 빠진 것이다. 제대로 찾아 가더라도 주차장 이용 가격은 정규시즌 웬만한 티켓가격에 맞먹는다. 1시간 무료 이용 이후 10분당 1000원이 과금돼 4시간 동안 경기를 볼 경우 주차료로 1만8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민영주차장 이용에 불편을 느낀 일부 이용객들은 인근 대학교와 아파트 단지에 차를 세우기도 했다. 고척돔의 주차 공간 부족이 지역 학생 및 주민들의 또 다른 불편을 야기시키는 셈이다.

자동차가 애물단지가 되다 보니 야구팬들 사이에선 ‘고척돔에 차를 몰고 가면 호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이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들도 만만치 않은 불편을 겪었다. 경기가 끝난 오후 11시께 시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만 이를 옮길 버스와 지하철 증편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척돔 지근거리인 구일역엔 수백명의 시민이 몰렸다. 열차 배차 간격은 구로·개봉 방향 모두 평소와 같은 10분당 1대 꼴이었다.

새해 첫날 자정을 넘어 끝난 프로농구 ‘송구영신 매치’ 당시 고양시가 7개 노선의 버스를 증편해 농구팬들의 편의를 도왔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박원순 시장까지 나서서 시구를 할 정도로 WBC 서울 유치에 생색을 내던 서울시는 대수롭지 않다는 눈치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대회 기간 동안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증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