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전격 해체하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 자율 경영에 나서면서 향후 삼성 경영방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는 삼성이 정경유착 논란을 단칼에 끊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장기 투자·M&A 가능할까

삼성 미래전략실은 그룹 차원의 신사업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삼성은 그간 반도체,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기업 규모를 키워 왔다는 점에서 미래전략실의 부재가 신사업 육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2018년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표적이다. 2010년 미래전략실은 10년 후 삼성을 먹여살릴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제약산업을 선정하고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이 절반씩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본금을 대도록 결정한 것도 미래전략실이다. 삼성 관계자는 “전자업체와 섬유업체가 함께 바이오산업에 투자한다는 건 계열사 자율경영으로는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전장(電裝)업체 하만 인수 등 조 단위 돈이 들어간 주요 인수합병(M&A)도 미래전략실에서 최종 결정했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60년 가까이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맡아 온 주요 M&A에 대한 판단을 계열사에 넘기면 과거처럼 신속하게 결정하긴 어렵다”며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산업에서 판단 지연이 우려된다”고 했다.

사업재편·중복투자 조정 어려워질 수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삼성은 대대적인 사업재편을 추진했다. 2014년에는 화학 계열사와 삼성테크윈 등의 매각 결정을 내렸고, 지난해에는 삼성전자가 프린터솔루션사업부를 휴렛팩커드에 팔았다. 그룹 차원에서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고 새로운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미래전략실이 사라지면서 그룹 차원의 사업재편도 어려워진다.

계열사 간 중복 투자 정리도 문제다.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구조조정본부는 1990년대 초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삼성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을 중재했다.

고용 등 사회적 책임 약해지나

미래전략실은 그룹 차원의 채용 목표를 정하고 저소득층 및 여성·지방대 졸업자에게 일정 비율을 할당해 왔다. 이 때문에 필요보다 조금 더 많이 채용해 왔다는 것이 삼성의 설명이다. 계열사가 직접 채용에 나서면 채용 인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미래전략실은 각 계열사가 낸 분담금을 모아 삼성사회봉사단을 운영했다. 삼성화재의 맹인안내견 분양 등 계열사별 사회공헌 사업과 스포츠단 운영도 미래전략실이 배분했다. 삼성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이 사라진다고 계열사들이 사회봉사단에 내는 분담금을 바로 끊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이사회에 책임이 부여되는 만큼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지원은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계열사 방만 경영 차단 가능할까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계열사의 방만 경영을 차단하는 것도 미래전략실의 역할이었다. 1996년 구조조정본부는 월간 손익이 적자로 돌아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1998년까지 약 1만명이 삼성전자를 떠났다. 위기가 장기화할 거라는 예상이었고 이는 결국 들어맞았다. 계열사들은 그룹 체제에서 누렸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은 그룹에 기대지 않고 독자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선진 기업들도 겪고 있는 모럴해저드 문제를 각 계열사가 어떻게 해결할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지주사 전환 빨라질까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온 미래전략실이 사라지면서 지배구조 개편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을 끈다. 이 부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이미 상당히 확보한 가운데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등 남은 작업은 미래전략실 해체로 오히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장 공격을 많이 받은 미래전략실을 통한 탈법적 승계 문제가 해소됐다”며 “삼성전자 이사회라는 합법적 틀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경목/김현석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