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8번째 맞는 3·1절이다. 잘 알려진 대로 1919년 오늘 민족대표 33명을 비롯, 한반도 전역에서 한국인들은 한일강제병합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3·1 운동은 지금까지도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세운동은 한국인이 이제 왕조의 신민이 아니라 자각한 국민으로 깨어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헌법이 명기하고 있듯이, 3·1 운동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며 독립운동 전개에 출발점 역할을 해냈다. 이후 거의 모든 독립운동 세력은 3·1 운동을 자신의 모태로 간주해 왔다.

3·1 운동은 1차 세계대전 후 열린 파리강화회담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서 적잖이 영향을 받았다.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윌슨의 주장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다소는 순진해 보이는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어떻든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의 민중은 민족이라는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는 한국인 또는 한민족이라는 자아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일제의 식민지가 된 지 근 10년이 돼서야 눈을 뜬 한국인의 자의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오늘 3·1절을 맞은 국민 대부분은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나라가 둘로 쪼개지다시피 한 것이 오늘의 정치다. 오늘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가 예고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실 여부조차 불투명한 일부 언론 보도는 촛불시위를 촉발했고 이내 국회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광장을 점령한 촛불 민중은 역사의 전선에 서 있다는 벅찬 감동과 함께 마치 권력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당대의 대통령을 마음껏 조롱도 해봤다. 촛불시위가 거세지자 이에 질세라 이번에는 태극기 집회도 압도적인 군중을 형성하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 3개월여가 지난 지금, 탄핵사건은 혼돈 그 자체다. 특검과 헌법재판소도 광장의 흙먼지에 오염됐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3·1 운동 한 세기가 다돼 간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지금 광장은 법치와 자유의 근대 시민이라기보다는 민중의 흥분과 함성이 압도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