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창립 15주년…'고속성장 원년' 선포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불혹(不惑)을 넘긴 나이에 시작한 도전이었다. 바이오 의약품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때였다. 허허벌판이던 인천 송도에 바이오 공장을 지었다. 신약과 약효가 같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에 나섰다. 누군가는 무모하다 말했고, 누군가는 손가락질했다. 15년 뒤 과거의 의심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선보인 데 이어 항암 바이오시밀러 두 개를 시장에 내놨다. 글로벌 제약사도 지금까지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한국이라 가능했던 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적 수준이 높고 지고 못 사는 근성을 가진 젊은이들이 한국에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회사가 한국에 있지 않았다면 해낼 수 없었을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은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분야 세계 1위 회사로 성장했다.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유방암 바이오시밀러 ‘허쥬마’, 혈액암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 등 3종을 상용화했다.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다이다.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는 지난해 누적 수출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초다.

램시마는 올해 단일 품목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 회장은 이날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 “올해가 고속성장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이오 창업 신화 쓰다

[단독] 창립 15주년…'고속성장 원년' 선포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서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를 쓴 인물로 꼽힌다. 삼성전기, 한국생산성본부, 대우그룹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하던 그는 외환위기 때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에게 바이오 원천기술이 있을 리 만무했다. 2013년 이후 연간 수조원 규모로 팔리는 바이오 의약품 특허가 끝난다는 사실에 그가 지닌 기업가로서의 감(感)이 발동했다. 특허가 만료된 제품을 복제해 개발하자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일이었다. 서 회장은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는 태도로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서 회장은 인터뷰 내내 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지난해 셀트리온 종무식에서는 “셀트리온의 선장인 것이 영광스럽다”며 “2016년을 기억할 때 서로 같이해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램시마 판매허가를 획득했다. 미국 국적 외 제약기업으로는 처음이었다. 서 회장은 “세계 1등을 해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 셀트리온에서는 1등 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며 “그 사실만으로 고무돼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주고 있다”고 했다.

◆“청년들 도전정신 이끌어야”

벤처기업이던 셀트리온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서 회장은 “벤처기업가의 역할은 스스로 성공하는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훌륭한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벤처기업가의 역할”이라며 “한국 청년들이 일하는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대학·연구소와 사업화를 맡은 기업의 분업을 독려해야 한다는 게 서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야 한다”며 “대학이 개발한 연구를 기업이 가져다가 상용화하는 연구 기술거래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의 해외 사업과 셀트리온스킨큐어 등 계열사를 직접 챙기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글로벌 유통 파트너사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전략회의를 열었다. 화이자, 먼디파마, 테바 등 셀트리온 제품을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사 CEO들을 직접 만났다. 서 회장은 “내년에는 셀트리온 매출만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체 제약 사업에서 순이익 1조원을 넘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