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제2국제공항(KILA2)에서 암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사망사건 용의자 두 명이 사흘 만에 체포됐다. 현지 경찰은 체포된 용의자들과 도주 중인 용의자 모두 막후 정보기관으로부터 살인 청부를 받은 암살단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여권 여성, 변장 시도

말레이시아 경찰은 지난 15일 오전 8시20분께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베트남 남딘 출신 도안티흐엉(29·여권정보 기준)을 체포한 데 이어 16일에는 인도네시아 국적자로 확인된 시티 아이샤(25)도 체포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아이샤의 남자친구로, 여성 용의자 두 명을 태우고 공항을 빠져나간 택시 기사 무함마드 파리 잘라루딘의 도움 덕에 혼자있던 아이샤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도안티흐엉은 공항 폐쇄회로TV(CCTV)에 얼굴이 비교적 선명하게 찍힌 흰색 ‘LOL(크게 웃는다는 뜻의 영어 줄임말)’ 티셔츠와 짧은 치마 차림의 여성이다.

말레이시아 언론 더선데일리는 그가 경찰에서 “같이 온 친구(시티 아이샤)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거리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해 같이 왔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틀 만에 공항에 되돌아와 순찰 중이던 경찰에 붙잡힌 그는 김정남의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린 사실 등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못된 장난”을 하는 것으로 여겼을 뿐 살인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 교도통신이 현지 호텔 등을 탐문한 결과 그는 11일 묵었던 호텔에 다음날 현찰 1만링깃(약 256만원)을 들고 와 더 투숙하겠다고 요청했으나 예약이 꽉 차서 다른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옮긴 호텔에서 그는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라 변장을 시도했다.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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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 정보기관 있다

말레이시아 중국어 신문인 동방일보는 “현지 경찰은 암살에 가담한 여섯 명이 ‘특정 국가의 정보기관에 속한 공작원’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신 막후로 의심받는 국가가 과거에도 자국 정보기관 공작원을 활용하지 않고 암살단을 고용한 전례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경찰은 체포한 용의자들을 상대로 이중 신분 소지자 여부와 도주한 남성 네 명의 신원 및 배경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방일보는 도안티흐엉이 나머지 서너 명의 남성 용의자 가운데 베트남과 북한계가 포함돼 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중국어 신문인 광화일보는 경찰이 아이샤가 범행 직전 공항에서 암살을 사주한 당사자로 의심되는 한 남성과 대화하는 장면을 CCTV로 포착하고 그의 행방을 집중 추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자금 반납 후 귀국” 거부 탓?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5일 북한 고위 간부를 인용해 “김정은이 국가보위성에 김정남에게 소란을 피우지 말고 스스로 귀국하도록 설득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 간부는 보위성 관계자가 지난달 20일 마카오에서 김정남과 만났으나 김정남이 “생각할 기회를 달라”며 시간을 끌자 한국 등으로 망명할 가능성을 염려해 살해 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아흐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인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현지 언론 프리말레이아시아투데이는 김정남의 둘째 부인 이혜경 씨가 중국 정부에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부검 분석 결과는 주말께 발표할 예정이다.

이상은/박진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