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조원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시장의 마지막 안전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처럼 시장이 대내외 돌발악재로 크게 흔들릴 때 자금을 적재적소에 수혈하고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연금자산이 계속 불어나는 속도에 맞춰 국내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최근 들어 국내 주식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수립한 국민연금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올해 국내 주식투자 규모(순증 기준)는 2000억원으로 전체 여유 자금 87조9000억원의 0.23%에 불과하다. 2016년 4조1000억원에서 95% 급감한 수준이다. 다른 연기금이나 공제회, 대형 보험사들도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고 해외 대체자산을 적극 늘리고 있다.

연기금들이 국내 시장을 꺼리는 이유는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주식투자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보유 자산이 국내 시장에 집중되는 데 따른 위험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그룹 계열사 보유 지분가치가 총 52조원으로 국민연금 전체 주식 자산의 52%를 차지했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81곳, 5% 이상은 총 290곳에 이른다.

많은 전문가는 연기금이 국내 주식을 외면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가뜩이나 취약한 국내 자본시장 기반이 더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거꾸로 “연기금, 보험사 등 장기 투자자들을 국내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자본 시장의 수요 기반을 확충하고 경제 성장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고 강조한다. 일본이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GPIF)을 동원해 자국 증시를 부양시킨 아베노믹스의 성공 사례도 있다.

연기금들이 이런 역할을 하려면 사전에 변해야 할 것들이 있다. 연기금들은 우선 국내 운용사들의 ‘붕어빵식 운용 전략’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펀드매니저 출신인 장동헌 지방행정공제회 사업부이사장(CIO)은 “과거 중소형주 장세에선 국내 운용사들이 모두 중소형주를 쓸어담아 시장 쏠림 현상까지 초래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 전략 분산을 통한 포트폴리오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 평가 기준을 전면 개편한 것도 운용사들의 투자 전략 차별화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기업들의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 배당 확대 등과 같은 주주 중심 경영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시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한 요인은 반도체 부문의 실적이 크게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배당 확대 등 주주친화 경영 강화를 외국인들이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좌동욱/김대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