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천자 칼럼] 고독한 미식가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 칼럼] 고독한 미식가
    ‘혼자 먹는 밥(혼밥)’ 열풍을 몰고온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인 잡화수입상 이노가시라 고로는 도쿄의 오래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혼밥을 즐긴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결혼도 하지 않고 매장도 운영하지 않는 그에게 가장 특별한 즐거움은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아담하고 정겨운 집에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혼자만의 행복에 젖어든다.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요리사나 레시피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먹는 사람의 관점과 미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메뉴도 특별하지 않다. 야근 중에 사먹는 편의점 도시락, 입원해서 먹는 병원밥까지 포함된다. 맛있다는 표현을 할 때도 밍밍할 정도로 담백하다. 눈이 휘둥그레진다든지 하는 오버 액션이 전혀 없다.

    드라마로 인기를 끈 요인도 다르지 않다. 그냥 일 끝나고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 들어가 주문하고 맛있게 먹은 다음, 나오면서 ‘아재(아저씨) 유머’ 같은 말 몇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게 전부다. 셰프의 기상천외한 요리비법이나 식당 주인의 눈물겨운 사연을 곁들일 법도 하지만 그건 관심 밖이다. 이 단조로운 스토리가 한·중·일 시청자들을 끌어당긴 인기 비결이다. 과잉 이미지와 과장된 화법 대신 절제된 미식의 아름다움이 돋보인 것이다.

    이 작품을 그린 만화거장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가 그저께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데뷔한 그는 작품 주인공처럼 혼밥을 즐기기도 했지만 남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본 문호 나쓰메 소세키 얘기를 그린 《도련님의 시대》로 일본 최고 문화상을 받은 데 이어 프랑스 정부의 슈발리에 훈장까지 받았다. 천국에서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음식을 즐길 수 없다면 최고의 요리라 한들 무슨 소용이오’라고 읊조릴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혼밥이 흔해졌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에 혼여(혼자 하는 여행)까지 즐기는 ‘혼족(나홀로족)’ 시대가 됐다. 이들을 위한 개별 테이블과 1인용 식당도 늘고 있다. 아직은 햄버거나 분식, 중식이 대부분이지만 메뉴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곧 스테이크와 직화구이 고기가 1인 메뉴로 등장할 모양이다. 일본에선 이미 일상화된 모습이다. 혼자이지만 편하고 여유있게 즐기는 음식. 이제 혼밥은 더 이상 ‘쓸쓸하고 목이 메는’ 밥이 아니요, 옛날처럼 ‘먹어도 우울하고 배 고픈’ 밥이 아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토요칼럼] 월간남친과 청년 정책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만날 수 있다. 레지던트, 검사, 아이돌 스타 등 직업도 다양하다.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의 기본 설정이다. 월간남친은 드라마 속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의 이름이다. 구독료가 월 50만원으로 꽤 비싸지만 데이트 상대 선택지가 900명에 이른다. 최근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에서 한국 1위, 글로벌 1위에 올랐다.부서 회의 시간에 어쩌다가 이 드라마 얘기가 나왔다. 50대 부장이 젊은이의 트렌드가 궁금했는지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 뭐냐고 물었다. 30대 초반 사원의 답이 흥미로웠다. “가상 연애에선 상처를 안 받잖아요.” 드라마 속 가상 연인이 그렇게 말한단다. “나는 절대로 너에게 상처 안 줘.”이성 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꽤 깊고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상 연애라니. 어쩌다 우리 젊은이들이 감정적 상처가 두려워 가상 연애 스토리에 빠져들게 됐을까.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하던 중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전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5년 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아이가 축구 경기 도중 넘어져 크게 다쳤다고 한다. 아이 부모가 자기 아이를 넘어뜨린 아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하겠다고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교장이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축구 금지. 현재 근무 중인 학교는 운동회를 무승부로 끝낸다고 한다. 승패가 갈리면 진 편의 아이들이 패배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같은 이유로 졸업식에선 아무에게도 상을 안 주거나 모든 학생에게 상을 준다. 아이가 다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은 역설적으로 상처에

    2. 2

      [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프랭크 게리가 추구한 21세기 건축의 비전

      노아의 방주가 맞다.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공원 한쪽에 자리한 루이비통 미술관을 처음 본 순간, 그것은 유리로 만든 거대한 배였다. 항구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배의 정면이었다. 낮은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에 곡면의 유리 외피로 둘러싸인 우뚝 솟은 건물은 우리를 세상의 일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노아의 방주였다. 그것은 영혼을 씻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재탄생의 기지였다.이 건물을 의뢰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원래 루이비통의 명품 철학보다는 영업력을 중시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이 건물을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했을 때 그의 주문은 “저를 위해 뮤지엄 건물을 지을 땅을 보러와 주세요”였다.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은 루이비통을 위해서라는 뜻은 아니었다.루이비통과 헤네시의 인수합병 과정을 통해 배척된 루이비통 일가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사각형의 가방과 LV의 로고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이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건축형식인 자유로운 곡선과 비정형의 은유만이 비친다. 아르노 회장은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새로운 기업의 이미지를 이끌어갈 새로운 건축, 그리고 항해할 배, 그것은 게리의 작품 성향과 맞았으며, 1억유로에서 8억유로로 공사비가 증액됨에도 불구하고 추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독특한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에서의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의 어항에 든 잉어와 장난을 치며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주먹으로 쳐 쓰러뜨려 아버지가 후유증을 앓자 따뜻한 미국 LA로 이사해 택배기사를 하

    3. 3

      [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탈중국 넘어, 용중(用中)의 시대로

      중국 상하이를 찾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1920년대 유럽풍 건축물이 즐비한 거리인 우캉루 등 주요 명소엔 트렌디한 차림새의 한국 젊은이가 자주 눈에 띈다. 여행객만이 아니다. ‘딥시크 쇼크’ 이후 중국 혁신 현장을 찾는 기업인과 정치인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중국에 아직 기회가 있는가?” 中 배제한 공급망 동맹은 한계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탈중국 행렬이 이어졌다. 컨트리 리스크(국가 위험)는 현실화했고, 중국 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현대자동차, 삼성 스마트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은 아득해졌다. 여기에 미·중 경쟁 격화는 디커플링(탈동조화)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을 배제한 시장과 공급망 재편 등의 영향 속에서 모두가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중국에 밀리던 배터리 기업에도 기회가 왔다. 미국 자동차 빅3 기업과 수십조원대 합작 계약을 맺었다.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전기차 판매가 급감하자 빅3는 배터리 합작부터 칼을 댔다. 포드는 한술 더 떠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라이선싱했다. 냉혹한 경제 논리 앞에 ‘탈 중국 공급망 동맹’은 한계를 드러냈다.결국 본질은 경쟁력이다. 모두가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외칠 때, 새로운 협력 모델로 판을 바꾸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을 피하는 대신 냉정하게 역이용하는 ‘용중(用中)’의 지혜를 통해 시장·공급망·혁신, 세 축에서 조용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국내 기업 휠라(FILA)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재공략 중이다. 중국 스포츠 브랜드 안타(Anta)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사업 운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