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구조조정은 물 건너간 것 같다. 될 일도 안 된다는 선거 정국이다. 하물며 대통령 선거임에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의 꿈을 품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이 거제도다. 대선주자라면 결코 놓치지 않을 표밭 중의 표밭이다. 반 전 총장이 그 대우조선해양에 가서 한 얘기가 걸작이다. 유엔 총장을 하면서 만난 세계적 지도자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선박을 팔아주겠다나. 그래서 팔릴 배라면 외교력이 유엔 총장의 수십 배는 더 될 미국 대통령이 왜 망해나가는 조선소를 바라만 보고 있었겠는가. 멀쩡한 사람도 정치를 하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출마를 포기한 게 천만다행이다.

대선주자들이 대우조선해양에 쏟아놓은 거짓과 허풍이 어디 한두 마디겠는가. 근로자와 지역 주민은 속아 넘어가고 정부는 눈치만 살펴왔을 뿐이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이렇게 지연되고 있다.

그런 정치인들이 요즘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군산이다. 일감이 없어서 머지않아 가동을 멈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다. 고용과 지역 경제, 호남이라는 복합 소재가 대선주자들에겐 더 없는 매력이다. 회사는 난감하다. 출입을 차단했지만 정치인들은 막무가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당일 이곳을 찾았다. 그는 노조 및 협력사와의 간담회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늦어도 2~3년 안에 선박 경기가 살아나니 정부가 군함이라도 조기에 발주하면 풀릴 문제라는 것이다. 그가 정치에만 고수인 줄 알았지 조선산업에도 일가견이 있는 줄은 몰랐다. 터무니없다.

군함을 발주하면 된다는 얘기부터 그렇다. 그런 내용이 정부의 액션플랜에 들어 있다. 하지만 군함 두 척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무슨 걱정이겠나. 게다가 여객선 등은 조선 빅3와는 무관한 선종이다.

2~3년만 버티면 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가파른 회복은 없다. 전문 기관들의 일관된 전망이다. 경기가 회복돼도 예전의 호황은 결코 없다. 국제 경쟁 구도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어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출마 포기를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 등도 그렇게 군산조선소의 문을 두드린 정치인이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와 공장이 가동 중단의 위기에 몰리고 근로자들 자신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곳이다. 절실한 그들에게 되는 말, 안 되는 말 가리지 않고 해대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다.

근로자들과 지방자치단체는 실력 행사에 나섰다. 충격파가 작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대선주자를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요구를 공약에 넣어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며칠 뒤에는 대규모 궐기대회도 예정돼 있다. 노조는 회사를 4개로 쪼개 사업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회사 계획을 원천봉쇄하겠다며 국회로, 정당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들에게 사탕발림을 하고 있는 정치권이다.

이런 식이라면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이미 글렀다. 정치인들이 나대고 정부는 눈만 껌뻑거리더니 3사 체제를 2사 체제로 축소해야 한다는 핵심 보고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3사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 함께 죽는 길을 택했으니 구조조정이 될 턱이 없다.

게다가 대선주자들 탓에 단위 공장 가동 중단도 못하게 된 판국이다. 정부와 조선 3사가 도크 수를 31개에서 24개로 축소하기로 합의한 게 이미 석 달 전이다. 군산조선소는 현대중공업 11개 도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정치가 도크 하나 손을 못 대게 하는데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회사가 군산조선소를 폐쇄한다는 건 아니다. 수주 물량만 회복되면 다시 문을 열 요량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겠다는 노력에 발목을 잡는 게 바로 정치다.

경제 민주화, 지역 발전 등의 정치적 구호로 산업과 기업의 구조개편을 가로막는다면 일감 없는 공장만 양산된다. 그렇게 구조조정이 늦어지면 국민에게 돌아오는 피해만 커질 뿐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해운 구조조정을 망가뜨리더니 이젠 조선까지 말아먹을 태세다. 대선주자들이여, 제발 구조조정 현장에 얼씬거리지 말아주길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