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가 광장 함성으로 정리되는 건 불행…그 안에 희망 싹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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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한 김훈 씨
“제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라고 말들 하더군요. 아버지가 귀국한 뒤 그렇게 주장했지만 사실 과장된 얘기입니다. 당시 상하이에 있던 사람은 대부분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유랑 청년이었을 뿐이지요. 그런 아버지와 그 밑에서 태어난 아들의 삶을 이번 작품을 통해 그렸습니다.”
소설가 김훈 씨(69·사진)는 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공터에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새 장편소설을 낸 것은 2011년 10월 《흑산》 이후 5년여 만이다.
이번 작품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살아온 가상의 인물 마동수와 그의 두 아들에 관한 얘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가 이들 부자의 삶을 쉴 새 없이 흔든다. 작가는 그의 아버지 김광주 선생(1910~1973)과 자신의 모습을 등장인물들에 투영했다고 했다. 작품 속 마동수 부자는 아수라장인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힘겹게 연명한다.
그는 “이번 작품에는 영웅이나 저항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마동수와 아들들은 시대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휘청거리는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한 시대의 구조나 통합적인 전망 같은 거대한 걸 논하기보다 이런 협소한 내용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쓸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가 큰 시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는 건 나의 괴로운 고백이지만 여기에 거짓은 없어요. 섣불리 이념과 사상을 논하기보다 생활의 바탕 위에서 그걸 전개하는 게 옳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 작품을 스냅사진 또는 크로키에 비유했다. “세부적인 묘사를 하거나 시대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날카롭게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는 속도를 매우 빨리 해서 시대와 삶의 골격만을 그려내고 생살은 생략했습니다. 당초 지금 나온 책의 3배 분량으로 글을 썼지만 이런 관점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 걷어냈어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난 신문들을 많이 봤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유구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갑질’이더군요. 예컨대 6·25전쟁 때 고관대작이 군용·관용차를 징발해 자신의 응접탁자 세트와 피아노를 싣고 수십만명의 피난민 사이로 차를 몰고 먼지를 일으키며 부산으로 도망가는 식이었죠.”
그는 “이런 전통은 참 유구해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해방 7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엔진이 공회전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려고 한다. 한 여성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모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몸속의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는 것처럼 단전 아래에서 먼동이 텄다’고 묘사한다.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한 건 한심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념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희망이라는 건 결국 생활 위에 건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난세가 광장의 함성으로 정리되는 건 크나큰 불행이지만 그 안에 또 희망의 싹이 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분노의 폭발을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동력으로 연결하는 게 정치 지도자의 몫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소설가 김훈 씨(69·사진)는 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공터에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새 장편소설을 낸 것은 2011년 10월 《흑산》 이후 5년여 만이다.
이번 작품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살아온 가상의 인물 마동수와 그의 두 아들에 관한 얘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가 이들 부자의 삶을 쉴 새 없이 흔든다. 작가는 그의 아버지 김광주 선생(1910~1973)과 자신의 모습을 등장인물들에 투영했다고 했다. 작품 속 마동수 부자는 아수라장인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힘겹게 연명한다.
그는 “이번 작품에는 영웅이나 저항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마동수와 아들들은 시대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휘청거리는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한 시대의 구조나 통합적인 전망 같은 거대한 걸 논하기보다 이런 협소한 내용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쓸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가 큰 시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는 건 나의 괴로운 고백이지만 여기에 거짓은 없어요. 섣불리 이념과 사상을 논하기보다 생활의 바탕 위에서 그걸 전개하는 게 옳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 작품을 스냅사진 또는 크로키에 비유했다. “세부적인 묘사를 하거나 시대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날카롭게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는 속도를 매우 빨리 해서 시대와 삶의 골격만을 그려내고 생살은 생략했습니다. 당초 지금 나온 책의 3배 분량으로 글을 썼지만 이런 관점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 걷어냈어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난 신문들을 많이 봤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유구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갑질’이더군요. 예컨대 6·25전쟁 때 고관대작이 군용·관용차를 징발해 자신의 응접탁자 세트와 피아노를 싣고 수십만명의 피난민 사이로 차를 몰고 먼지를 일으키며 부산으로 도망가는 식이었죠.”
그는 “이런 전통은 참 유구해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해방 7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엔진이 공회전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려고 한다. 한 여성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모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몸속의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는 것처럼 단전 아래에서 먼동이 텄다’고 묘사한다.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한 건 한심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념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희망이라는 건 결국 생활 위에 건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난세가 광장의 함성으로 정리되는 건 크나큰 불행이지만 그 안에 또 희망의 싹이 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분노의 폭발을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동력으로 연결하는 게 정치 지도자의 몫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