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설, 고향, 그리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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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 조달청장 yhchung@korea.kr >
설은 늘 한결같았다. 기차표 예매와 함께 시작해 세뱃돈 준비하고 선물 마련해 고향으로 내려가 차례 지내고 짧은 머무름 후에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오는 길에 외손주 보고 세배받은 일정이 추가됐을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타향살이가 시작됐으니 어언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반복되는 설 모습이다.
필자에게 설은 고향, 그리고 어머니와 동의어다. 설날은 어릴 적 추억이 살아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자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살아가면서 8남매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늘 노심초사하던 어머니. 설에 내려가면 고이 간직한 먹음직한 홍시를 내주시고, 돌아올 때는 손수 지은 농작물을 하나라도 더 가져가라고 말싸움하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젠 이것마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돼버렸고, 고향에 가도 더 이상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없다. 마을 한가운데로 고속도로가 개통돼 어릴 적 풍광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설날은 그때의 추억들을 아름답게 채색해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설은 어떤 날로 기억되고 있을까? 어려서부터 도회지 생활을 해왔으니 어린 시절 아련한 시골 추억일랑 있을 리 없다. 1년에 한두 번 사촌들을 만나지만 함께 되새겨볼 추억거리가 없어 못내 서먹서먹하다. 최근의 안부를 걱정하는 친척들의 이야기는 아직 취업 못한 현실, 결혼 못한 상황에 대한 걱정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명절은 추억과 온정을 되새기는 시간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돼버린 걸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랐지만 어릴 적 고향과 어머니를 평생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배려해준 따뜻한 어머니 마음이 거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고향길이라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찾아가는 고향길은 예전과 같지 않다. 과거 한나절 걸리던 길이 이젠 3~4시간이면 넉넉하지만 더 자주 찾아가지는 않는다. 고향과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나 경제적 상황과 함수관계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와 함수관계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설날에 줘야 할 것이 넉넉한 세뱃돈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진정으로 아이들 편이 돼주고,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응원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따뜻한 엄마 마음이 아닐까. 시대에 따라 살아가는 형편은 다르지만 그 원리는 하나인 것 같다.
정양호 < 조달청장 yhchung@korea.kr >
필자에게 설은 고향, 그리고 어머니와 동의어다. 설날은 어릴 적 추억이 살아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자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살아가면서 8남매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늘 노심초사하던 어머니. 설에 내려가면 고이 간직한 먹음직한 홍시를 내주시고, 돌아올 때는 손수 지은 농작물을 하나라도 더 가져가라고 말싸움하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젠 이것마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돼버렸고, 고향에 가도 더 이상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없다. 마을 한가운데로 고속도로가 개통돼 어릴 적 풍광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설날은 그때의 추억들을 아름답게 채색해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설은 어떤 날로 기억되고 있을까? 어려서부터 도회지 생활을 해왔으니 어린 시절 아련한 시골 추억일랑 있을 리 없다. 1년에 한두 번 사촌들을 만나지만 함께 되새겨볼 추억거리가 없어 못내 서먹서먹하다. 최근의 안부를 걱정하는 친척들의 이야기는 아직 취업 못한 현실, 결혼 못한 상황에 대한 걱정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명절은 추억과 온정을 되새기는 시간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돼버린 걸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랐지만 어릴 적 고향과 어머니를 평생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배려해준 따뜻한 어머니 마음이 거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고향길이라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찾아가는 고향길은 예전과 같지 않다. 과거 한나절 걸리던 길이 이젠 3~4시간이면 넉넉하지만 더 자주 찾아가지는 않는다. 고향과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나 경제적 상황과 함수관계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와 함수관계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설날에 줘야 할 것이 넉넉한 세뱃돈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진정으로 아이들 편이 돼주고,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응원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따뜻한 엄마 마음이 아닐까. 시대에 따라 살아가는 형편은 다르지만 그 원리는 하나인 것 같다.
정양호 < 조달청장 yhchung@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