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특검이 지향해야 할 가치
‘최순실 국정농단’을 다루는 특별검찰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들 사이의 뇌물수수 혐의에 주목한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특혜를 주고 이해관계가 밀접한 최순실이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국민연금을 통해 지원한 것이 특히 문제적이라 한다.

모든 시민의 삶에 늘 영향을 미치므로 어느 대통령이나 경제는 손수 챙긴다. 한국 경제는 외부의 영향을 크게 받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이 적다. 내부적으로도 소비에 정부 정책이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부작용도 많다. 자연히 한국 대통령들은 투자에 매달리고 이내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을 독려한다.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급히 투자하게 되니, 대기업으로선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그런 어려움을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대기업들은 처지가 어렵다. 규제는 점점 심해지고 임금은 생산성에 비해 너무 높고 ‘귀족 노조’는 정상적 경영을 위협한다. 국력이 약하니,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선 규제와 보복을 유난히 많이 받는다. 대기업의 그런 처지를 안쓰러워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자격이 부족하다.

빠르게 자라난 한국 대기업들은 대주주 지분이 아주 적어서 늘 경영권을 위협받는다. 범지구적 기업 삼성전자는 특히 그렇다. 대주주 지분을 늘리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는데 국민연금이 합병을 지지해서 성사됐다. 당시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국민연금의 지지에 호의적이었다. 만일 합병이 무산됐다면 대통령은 비난받았을 터고 그런 비난은 정당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 문제에 간여하는 것이 문제적인 것도 아니다. GM이 위기를 맞았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파산을 통한 혹독한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그 덕분에 GM이 회생해서 흔들리던 미국 제조업을 안정시켰다.

정부가 시장을 압도하는 한국 사회에선 대통령과 대기업 사이의 관계가 늘 비정상적이었다. 대통령이 기업들을 자의적으로 합병시킨 ‘빅딜’을 기억하는가? 대통령이 기업가를 불러 멀쩡한 기업을 내놓으라고 강요해도 기업가는 하소연할 데가 없던 ‘재산권의 암흑기’였다. 재산권 관점에서 살피면 현 정권이 권력 사용에서 가장 절제적이었다. 당연히 가장 청렴했다. 준조세를 가장 적게 거뒀다는 사실에서 그 점이 드러난다.

지금 어지간한 일들은 대통령이 손수 챙겨야 풀린다. 박 대통령 자신의 잘못도 크지만, ‘변양호 신드롬’으로 관료들이 몸을 사린다는 사정도 있다. 시장의 일상적 거래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 검찰이 무리하는 바람에, 위기를 스스로 헤친 훌륭한 경제 관료가 명예와 일자리를 잃은 뒤 나온 현상이다. 그 부끄러운 일은 한국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렸고 우리 경제의 국제적 거래비용을 영구적으로 높였다. 이처럼 박 대통령과 대기업 사이의 협력은 자연스러웠다. 만일 그런 협력을 통한 경제 회생 노력이 없었다면 박 대통령은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터다. 이 일과 관련해 나온 잘못들은 따로 다루면 된다. 그런 부수적 행위들로 대통령의 정상적 직무 수행 자체를 문제 삼는 특검의 태도는 분명히 문제적이다. 그런 ‘본말의 전도’가 시민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법의 궁극적 기능은 분쟁 해결(dispute settling)이다. 이 일에서 중요한 것은 재판정의 권위다. 재판정이 충분한 권위를 지녀서 판결에 모두 승복해야 분쟁이 풀린다. 재판정의 권위가 충분치 못하면 분쟁은 끝날(dispute ending) 따름이지 풀리는 것이 아니다. 재판정의 권위가 그리도 중요하므로, ‘법이 없는 재판정은 모순이 아니다’라는 법언까지 나왔다.

검찰은 재판정의 주요 부분이다. 당연히 검찰의 권위는 재판정과 판결의 권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촛불 정국’에서 특검이 느낄 심리적 압박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클 것이다. 그런 압박을 견디면서 권위를 스스로 확보해야 특검은 사회를 깊이 분열시킨 분쟁을 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