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증가세로 반전되고 주요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는 등 실물 경기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만족감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적으로 불안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는 ‘노후 준비 부족’이 꼽혔다. 급속한 고령화와 연 1%대의 저금리 기조, 아직 미흡한 공적연금 체계 등이 노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후준비 못해 불안"…경제행복지수 곤두박질
◆경제행복지수 5년 만에 최저

현대경제연구원(HRI)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달 7~21일 전국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9회 한경-HRI 경제행복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하반기 국민의 경제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38.4점에 그쳤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불황을 겪은 2011년 하반기(37.8점) 후 최저치다. 경제행복지수는 응답자가 소득 물가 고용 등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을 설문을 통해 분석하고 수치화한 것이다.

올 하반기 경제행복지수가 하락한 것은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조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경제적 불안 항목을 구성하는 ‘물가 불안’(27.1점)보다 ‘실업률 불안’(23.3점) 점수가 상대적으로 더 낮게 나왔다”며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공포’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년이 불안하다”

경제적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을 묻는 질문에 ‘노후 준비 부족’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1년 전 조사(28.8%)보다 5.2%포인트 높아졌다. 자녀 양육·교육비에 결혼 준비까지 돕느라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한 5060세대의 걱정이 반영된 수치다. 연 1%대 저금리 기조도 미래 경제 여건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김 실장은 “아직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국민연금, 부모 봉양을 꺼리는 사회적 풍토 등도 노년층이 노후를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자녀양육·교육(21.7%), 주택문제(18.4%), 일자리 부족(16.3%) 등이 경제적 행복의 장애물로 꼽혔다.

◆20대 미혼 여성 가장 행복

급증한 가계 부채도 한국 중산층의 경제적 행복감을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 소득 6000만~8000만원 구간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45.0점으로 지난해 하반기 조사(52.1점)보다 7.1점, 1년 전 조사(56.9점)보다 11.9점 하락했다. 김 실장은 “주택담보대출 등 빚을 많이 진 소득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학력별 경제적 행복감 격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대졸자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조사(42.5점)보다 1.5점 하락한 41.0점, 대학원 졸업자 지수는 3.8점 떨어진 46.2점을 기록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하다’는 한국인의 행복 공식은 유효했다. 은퇴 이후 소득이 감소한 60대 이상(29.3점)은 연령대별 최하위점을 기록했다. 반면 경제적 책임감이 무겁지 않은 20대(46.5점)와 30대(42.7점)는 행복지수가 높았다.

직업별로는 공무원(46.9점)이 최고점을,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28.1점)가 최하점을 기록했다. 미혼의 행복지수(43.9점)는 이혼·사별한 그룹(15.5점)의 세 배에 달했다. 성별로는 여성(40.2점)이 남성(36.5점)보다 소폭 높았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