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상 바람 타고 다시 돌아온 가치주
미국이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 2014년 10월.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는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신흥국을 일제히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에 코스피지수는 1900.66(2014년 10월17일)까지 내려앉았다. 이후에도 ‘미국 금리 인상’은 ‘약세장’이라는 말과 한묶음으로 간주됐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마다 약세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일이 반복됐다.

과거와 달라진 미국 금리 인상 해석법

미국 금리인상 바람 타고 다시 돌아온 가치주
공포에 익숙해져서일까. 미국의 금리 인상 시계는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시장이 느끼는 불안감은 한층 줄어든 모습이다. 미국이 내년부터 3년간 매년 세 차례씩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15일 코스피지수 하락폭은 0.01%에 불과했다. 이미 코스피지수가 5년 박스권의 윗부분인 2040 근처까지 올라왔음에도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을 팔지 않았다. 오히려 기관은 추가 상승에 베팅하는 코스피지수 연계 상장지수펀드(ETF)를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모습이었다.

미국 금리 인상이란 재료를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회복,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종언 등으로 미국 금리 인상을 해석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의 외국인 수급이 안 좋아질 수 있지만 주가를 크게 위협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리서치 담당 이사는 “한국은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6%로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나라”라며 “미국을 필두로 주요국 경기가 회복되는 시기엔 증시가 하락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증권사가 발표한 내년 코스피지수 전망치에도 낙관론이 묻어난다.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피지수가 1900~2273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내놓았던 올해 전망치(1861~2227)보다 상단과 하단이 각각 50포인트가량 올라왔다. 일부 자산운용사는 5년 박스권이 끝나고 대세 상승장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승장의 근거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로 거론되는 근거는 이른바 ‘그레이트 로테이션’이다. 미국 금리의 방향이 바뀌면서 채권에 묶여 있던 글로벌 자금이 일제히 주식으로 이동한다는 가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조달러를 인프라 투자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한 것도 증시 강세론의 한 배경이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식은 물가가 오르면 몸값이 뛰는 자산으로 인플레이션과 궁합이 잘 맞는다.

가격 매력 갖춘 가치주로 자금 이동

국내 변수도 증시에 우호적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국내 상장사 이익이 ‘탄탄대로’다. 올해 국내 주요 상장사(실적 추정치가 있는 360여개 기업 기준) 순이익은 사상 최고치인 95조~1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내년 전망치는 이보다 많은 107조원에 달한다. 불경기에 익숙해진 기업들이 원가 절감, 체질 개선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 능력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위탁 운용사에 강제하던 벤치마크(평가의 기준이 되는 지표로 주로 코스피지수) 복제율 기준을 폐기한 것도 투자심리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자산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종목을 발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들이 배당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 한국 증시와 ‘세트 메뉴’로 불리는 중국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점 등도 국내 증시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내년 시장을 ‘신(新)가치주 시대’란 말로 요약한다. 주가가 오르되 실적 대비 몸값이 싼 종목으로 집중적인 매수세가 밀려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중장기 성장성이 떨어져 제값을 받기 힘들었던 화학, 철강 등의 경기민감주, 금리가 오를수록 실적이 좋아지는 금융주 등이 저가 매력으로 상승장을 주도할 업종으로 꼽혔다.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는 “시장에서 소외된 업종들의 키 맞추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코스피지수가 전고점을 뚫고 2300선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