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처럼 더 즐거운 체험 제공문화의 향기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그래서 등장한 것이 무비컬이나 주크박스 뮤지컬 같은 장르다. 흘러간 왕년의 흥행 영화나 좋아하던 가수의 음악들로 꾸며진 무대용 콘텐츠들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노블컬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소설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노블’에 뮤지컬을 더해 합성한 용어다. 활자가 무대에 구체적으로 구현되며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매력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올 연말 공연가에서 최고 화제로 등극한 작품도 OSMU의 대표적 사례다. 바로 ‘팬텀’이다. 프랑스 작가인 가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한 동명 타이틀 소설이 원작이다. 기자 출신인 르루는 당시 파리에서 실제 일어난 몇몇 죽음과 미제 사건을 엮어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유령이라 불리는 인물이 살았다는 내용의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1920년 괴물역 단골 영화배우인 론 채니가 특수분장을 하고 나온 괴기 영화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주인공이 늘 가면을 쓰고 다니고 그 안에는 흉측한 이미지의 괴물 같은 사내가 있다는 강렬한 이미지는 소설 못지않은 영화의 흥행이 큰 기여를 한 것이다.
뮤지컬 작품도 여러 편이다. 우리나라에선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작품이 유명하다. 무대는 배고픈 예술이란 선입견을 깨뜨리고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다. 실제로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기록적인 매출을 보인 이후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뮤지컬의 성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앙코르 무대가 꾸며진 ‘팬텀’은 웨버가 아니라 모리 예스톤이 만든 버전이다. 예스톤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을 각색한 뮤지컬 ‘나인’으로 토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명한 뮤지컬 작곡가다. 웨버의 버전이 판타지 같은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것에 비해 그는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며 원작에 가까우면서도 로맨틱한 이야기를 만들려 노력했다. 이 덕분에 ‘오페라의 유령’에선 만날 수 없던 유령의 출생 비밀이나 크리스틴이 음악을 사사하는 과정 등 뒷이야기가 훨씬 사실감 있게 묘사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유독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하는 관객이 더 많이 찾는 무대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우리말 무대가 꾸며지며 다양한 시도도 더해졌다.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으로 이뤄진 유령 역과 김소현, 김선영, 이지혜의 크리스틴 다에 역도 흥미롭지만, 발레리나 김주원과 황혜민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선하다. 자칫 통속극처럼 보일 수 있는 스토리의 무대를 적절히 포장하고 상쇄시킨다. 몸동작 하나, 노래 한 소절이 전율을 안겨줄 정도다. 시각적으로도 무척 만족스럽다. 제작사인 EMK가 최근 선보이는 작품들의 특징이다. 원작은 외국의 것을 가져오되 무대를 보는 재미는 업그레이드하겠다는 현지화 전략이다. 샹들리에도 떨어지고, 파리 지하 호수 위로 배가 떠다닌다. 웨버의 작품을 즐겼고, 소설까지 탐독했다면 분명 눈물 찔끔 나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표를 구하기 힘든 어려움만 극복할 수 있다면 연말 최고의 문화체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두르기 바란다.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