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Law&Biz] "로펌은 돈·권력보다 법치주의 추구하는 가치집단 돼야"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로펌 창업자에게 듣는다 - 김인섭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

    법관의 존재가치 없어진 80년…한국적 국제로펌 꿈꾸며 사표

    법률은 상품 아닌 역사·문화
    미국식 영리 위주 벗어나 한국인 정서에 맞는 로펌 창업

    약속대로 65세에 일선서 퇴진…사회환원·가치 보존에 온 힘
    법치주의 운동에 여생 바칠 것
    [Law&Biz] "로펌은 돈·권력보다 법치주의 추구하는 가치집단 돼야"
    국내 로펌들의 덩치가 몰라보게 커졌다. 영국 미국 등 글로벌 로펌도 한국 변호사들의 실력을 인정한다. 개인 법률사무소에서 벗어나 서구식 로펌이 한국에 등장한 지 불과 30~40년 만의 일이다. 법률시장 개방과 장기 불경기로 주춤하고는 있지만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적 로펌으로 일궈낸 창업자들을 최근 만나 한국 법률시장의 과거와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가난해도 좋으니 대법관까지는 가야지.” 법관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뛰면서 반대했다. 김인섭 판사(태평양 명예대표·고등고시 14회)의 실력을 아는 선후배 판사들도 안타까워했다. 판사를 평생직으로 알고 살아온 그였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이었다. 17년2개월간의 판사 재직 기간은 박정희 정부 시절과 거의 겹친다. 보람도 많았지만 좌절도 적지 않았다. “판사 첫 월급이 1만3000원이었어요. 어머니와 아내, 자식 둘 해서 다섯 식구가 아무리 절약해도 15~20일이면 돈이 다 떨어져 외상을 달고 지냈죠. 더 어려운 시절도 견뎌냈기 때문에 생활고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절차적 가치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통치시대가 열리니 법관의 존재가치가 없어졌죠. 판사(判事)의 역할을 반도 제대로 못한다고 해서 우리끼리는 ‘반사(半事)’라고 불렀습니다. 지조와 기개가 다 꺾여 더 이상 보람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사표를 던졌죠.” 그의 나이 마흔넷, 1980년 11월의 일이었다.

    ◆전관예우 포기, 사건수임은 가려서

    변호사 개업에 앞서 그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전관예우 포기, 둘째는 사건을 가려서 수임하기였다. “1980년대만 해도 전관예우가 지금처럼 큰 문젯거리가 안 됐죠. 하지만 이런 일로 친정인 사법부를 욕먹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관예우에 의존하는 사무소는 길어봐야 3, 4년이면 끝납니다.”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가르친 후배 판사들과 법정에서 마주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수익과 직결되는 수임을 가려서 하겠다는 발상은 예나 지금이나 파격적이다. 마약 밀수 등 반사회적 성격의 조직범죄 사건, 정치공작 관련 사건, 부동산투기와 악덕 사채업자 사건, 이혼 사건 등이 수임해선 안 될 사건 리스트다.

    단독개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꿈은 더 컸다. 한국적 국제로펌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대는 앞서가는데 법률가는 한참 뒤떨어져 있었죠.” 당시 잘나가던 소송 중심 변호사들은 돈 벌어 땅을 사 재테크에 몰두하거나 정계에 진출했다. 인권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산업화에 발맞출 국제 관련 법률전문가가 시대적 요구라고 그는 판단했다.

    ◆미국로펌 흉내 안 낸 토종로펌

    그렇다고 당시 유행하던 미국식 로펌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법률은 상품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박은 특수한 제도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법률가는 가치집단입니다. 영리 위주의 미국식 로펌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좋은 이웃이면서 국가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로펌이 필요한 때였죠.” 김 변호사가 그린 한국적 국제로펌은 변호사 전통업무인 송무(소송)를 중심으로 하고 기업법무, 국제법무로 확장해나가는 로펌이었다. 김장리, 김앤장 등 당시 뜨고 있던 로펌은 대부분 미국 유학파들이 세웠다. 업무도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 관련 법률사무와 국제거래분야 법률사무 위주였다는 점에서 태평양과는 출발이 달랐다. 그는 또 고참 변호사를 뜻하는 ‘파트너’와 신참인 ‘어소시에이트’라는 미국 로펌식 용어가 ‘사용자’와 ‘피용자’라는 어감을 풍긴다는 생각에 ‘시니어’와 ‘주니어’로 대체했다.

    ◆그의 꿈을 믿고 찾아오는 인재들

    1986년 12월10일 ‘법무법인 태평양 합동법률사무소’를 정식 설립했다. 영문으로는 Bae, Kim & Lee다. 검찰 간부 출신인 배명인 변호사와 김 변호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출신으로 미국 노트르담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한 이정훈 변호사의 성을 따서 만들었다. 이재식(1983년), 황의인(1985년) 변호사는 로펌 설립 전에 이미 합류한 상태였다. 설립 이듬해에는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 코스를 마친 뒤 미국 변호사 자격을 딴 오용석 변호사가 들어왔다. 이어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등에서 성적이 우수했던 이종욱, 김인만, 서동우, 오양호, 이후동 변호사 등이 속속 합류했다. 김 변호사는 “태평양에는 촌놈이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돈이나 권력을 좇기보다 김 변호사가 추구하는 법률가적 이상과 그의 인품 하나만 믿고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이 태평양에 모여들었다.

    ◆은퇴 후의 법치주의 운동

    김 변호사는 2002년 12월10일 현직에서 물러났다. 태평양에서도 나왔다. 만 65세가 되던 해였다. 로펌 개소식 날 “65세가 넘으면 직업 변호사를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법관과 변호사로서 40여년 이 땅의 법치주의 정착에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은퇴 후에도 그의 법치주의 운동은 계속됐다. 60세 후반의 각 분야 은퇴자 22명과 1년여간 준비한 끝에 2005년 봄 ‘포럼 19-21’을 출범시켰다. 2008년 5월 포럼을 확대해 만든 것이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다. 김 변호사는 “사회 환원과 무형의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로펌을 세웠다”면서 “앞으로도 법치가 뿌리내리는 일에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이미 정했는데 뭘 바꿔"…'몬티홀의 딜레마' 몰라서 하는 실수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수재들이 카드카운팅(블랙잭에서 확률과 통계에 기반해 나올 카드를 예측하는 베팅 전략)으로 카지노를 공략한 실화 바탕 영화 '21'에는 한 MIT 교수가 주인공의 재능을 확인할 목적으로 까다로운 확률 문제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세 개의 문 중 하나에 최고급 자동차를, 나머지 두 개엔 염소를 두고 하나의 문을 열면 그 뒤에 있는 것을 상품으로 주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자동차가 있는 문을 선택한 참가자에게 게임 진행자는 염소가 있는 2개의 문 중 하나를 열어주며 선택을 바꿀 기회를 준다. 이 경우 선택을 바꾸는 게 유리할까. 21의 주인공이 이 문제를 정확히 맞히자 교수는 그를 바로 도박팀에 합류시킨다.확률의 세계, 직관과는 달라이 문제는 <Let's Make a Deal>이란 이름의 미국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온 것으로, 진행자의 이름을 따 '몬티홀 문제'라 불린다. 실제 방송에서 대다수 참가자는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처음에 어떤 문을 선택했든지 간에 진행자가 이미 문 하나를 열고 난 이후 남은 문은 두 개뿐이므로 그중 자동차가 있을 확률은 모두 1/2에 불과하단 생각 때문이었다. 직관적으로 볼 때 매우 그럴듯하고, 정답에 관해 전국적으로 펼쳐진 논쟁에서도 이런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그런데 과연 그럴까. 확률의 세계는 우리에게 친숙한 직관의 세계와는 매우 다르다. 확률에서 절대적 명제는 '가능한 모든 경우의

    2. 2

      급여일 묻자마자 채용 취소…法 “명백한 부당해고”

      합격 통보를 받은 지 불과 4분 만에 예비 신입사원에게 일방적으로 채용 취소를 통보한 행위가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3부(부장판사 진현섭)는 마이뱅크 주식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채용취소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마이뱅크 측은 지난 2024년 6월 글로벌전략·사업개발 담당자로 지원한 박모씨에게 면접을 거친 뒤, 오전 11시 56분경 문자로 합격 소식과 함께 '연봉 1억 2000만원, 10일 출근'을 통보했다. 합격 문자를 받은 박씨가 감사 인사와 함께 주차 등록이 가능한지 묻자 사측은 “만차여서 불가하다”고 답했다. 이어 오전 11시59분 박씨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겠다. 급여일은 언제냐”고 묻자, 사측은 낮 12시 정각 “채용을 취소하겠다”고 돌연 통보했다. 합격 통보 4분 만에 황당한 해고가 벌어진 것이다.노동위원회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박씨에 대한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사측은 이 같은 판정에 불복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은 재판 과정에서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맞섰다. 또 “원고를 자사 소속 직원이 아닌 일본 자회사 핀플재팬의 경영인으로 착오해 합격 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법원은 이같은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마이뱅크와 자회사 마이뱅크인슈어런스가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고 인력을 교류하며 하나의 플랫폼을 운영해 온 점을 근거로, 두 회사가 사실상 하나의 사업장(5인 이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일본 법인 전문경영인 채용을 착오했

    3. 3

      지면 '쪽박' 이기면 '대박'…5조원 벌어들인 기업의 정체

      기업 법률 비용에 투자해 돈을 버는 영미식 금융 기법인 ‘소송금융(litigation funding)’이 국내 시장에 상륙했다. 그동안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 정도로 인식됐지만, 최근 한국 기업의 해외 분쟁이 늘면서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세계 1위 소송금융사 버포드캐피털은 지난 1월 한국사무소를 열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소송금융의 일종인 ‘제3자 펀딩(TPF·third party funding)’을 본업으로 한 글로벌 기업이 첫 국내 거점을 마련한 것이다. 버포드는 작년 기준 75억달러(약 10조8500억원) 규모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운용자산만 18억달러(약 2조6000억원)에 달한다.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소송금융 시장은 206억달러(약 29조7500억원) 규모다.글로벌 소송금융사들은 국내 기업의 해외 분쟁 수요 증가에 주목하고 있다. 신정아 버포드 한국지사 대표는 “건설·기술·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분쟁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일부 리걸테크 업체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다.  소송 승패에 수백억 판돈…"국제 분쟁 240억 투자해 1兆 수익"법적 분쟁이 투자 기회로국내 바이오 기업 메디톡스는 2022년 3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특허와 관련해 분쟁을 벌이던 휴젤을 제소했다. 미국 소송 전문 로펌 퀸이매뉴얼을 선임한 메디톡스는 최대 200억원으로 추정되는 법률 비용을 소송금융을 통해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