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타협도 했었지만… >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등 노·사·정 대표들은 지난해 9월15일 대타협을 자축하며 손을 맞잡았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 김대환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 대타협도 했었지만… >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등 노·사·정 대표들은 지난해 9월15일 대타협을 자축하며 손을 맞잡았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 김대환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이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돌발 악재를 만나 물거품이 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안심사 대상에서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아예 배제하기로 했다. 야당이 “노동개혁은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헌납한 대가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개혁 추진 동력을 잃은 여당이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무산] 3년 헛심만 쓴 노동개혁…실업급여 확대 등 노동계에 유리한 법안도 무산
◆3년간의 ‘개혁농사’ 없던 일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역사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에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맡기면서 노동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취임 일성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외쳤던 김 위원장은 취임 2년여 만인 지난해 9월15일 노동시장 구조 개혁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합의문 발표 하루 만에 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에 합의하지 않은 파견·기간제법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강력 반발했다. 3개월 뒤 정부가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이른바 ‘양대지침’을 발표하면서 노정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후 지난 1월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고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면서 노정 간 대화는 단절됐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계를 배제한 채 독자개혁을 추진하겠다며 20대 국회 들어 ‘당론 1호법안’으로 노동개혁 입법을 추진했으나 ‘최순실 정국’ 격랑 속에 좌초하고 말았다.

◆무전략 정부, 반대만 외친 노동계

지난해 9월15일 노·사·정 대표 4명(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김대환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노·사·정 대타협을 선언했을 때도 노동개혁이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1년 이상 이어온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와 노동계의 태도 때문이었다.

우선 노동개혁의 당위성만 주장하며 전략이 부족하던 정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2013년 정년연장,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계에 유리한 협상카드를 다 공개해놓고 뒤늦게 기간제법, 파견법을 받아들이라는 요구가 먹혀들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고용부가 ‘주전’으로 협상을 한창 하는 중에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 등 ‘장외’에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4월 한국노총의 대화 결렬 선언 이후 “대통령이 직접 챙기라”는 공익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대안 제시 없이 반대만 해온 노동계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에 참가했던 한 전문가는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하고 산업재해 보상 범위와 실업급여를 올리는 법안만이라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며 “노동개혁 입법이 무산된 것이 일견 노동계의 승리로 보일지 몰라도 결국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점령한 환노위도 문제

파견법을 제외한 노동개혁 3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법)은 노동계에 유리한 법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법안의 내용보다 정치적 이해 득실 계산에 따른 여야의 대립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 4월 총선 결과 국회는 여소야대가 됐다. 노동계 출신 의원이 다수를 차지한 환노위에서는 노동단체 의사에 반하는 어떠한 의견 표명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제외하고는 노동개혁법이 아니라 ‘노동복지법’으로 불릴 정도다. 파견법에도 생명·안전 관련 핵심업무에 파견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노사관계 전문가는 “근로자에게 유리하고 여야 간 별다른 쟁점이 없는 법안도 처리되지 못하는 것은 야당이 입법 성과를 새누리당에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며 “환노위가 노동단체 예산 지원 등 민원성 사업만 논의하는 곳으로 전락한 게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최종석 노동전문위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