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집 ‘서울의 미래, 서울의 선택’에 따르면 2040년 서울의 ‘젊은이’는 50대다. 유목민을 의미하는 ‘노마드’와 미혼을 의미하는 ‘싱글’의 합성어인 ‘노마딩글족’, 공동체에 의미를 두는 ‘소셜족’으로 나뉘는 이들은 미래 서울의 중추로 활약할 것이라고 한다.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사진)엔 2016년형 노마딩글족이 나온다. ‘히트곡 제조기’로 통하던 가요계의 ‘전설’ 김건모를 비롯해 신사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끈 박수홍, 날 선 입담의 귀재 허지웅,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 토니안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45세 안팎. 2040년 노마딩글족과 다른 게 있다면 아직은 이들의 삶에 제재를 가할 결정적인 존재가 늘 곁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열혈’ 어머니들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스타 4명의 집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해 일상을 촬영하고, 이를 어머니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부모는 함께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카메라 밖으로 나와 관찰만 한다.

영상을 통해 예상 밖의 상황을 접한 어머니들은 어리둥절하다 충격을 받기 일쑤다. 아들과 같이 그 상황에 있었다면 등짝이라도 때려주련만 스크린으로만 봐야 하니 화병이 날 지경이다. 그러다가도 다른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보고 혀를 차며 한심해 하면 옹호하기 바쁘다.

김건모가 똑같은 슈퍼맨 티셔츠를 30벌 주문하거나, 차 한 대 값의 자전거를 구입하려고 고민하는 과정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다른 어머니들 틈에서 김건모 어머니의 반응이 그렇다. 어머니는 속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티셔츠는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는 것이고, 면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명품 시계나 사치품은 일절 모른다”며 아들이 나이 50세인데도 용돈을 받아 쓰는 건실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박수홍이 클럽 마니아라는 사실에 그의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다른 어머니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면 “그래도 방 안에서 술 마시는 것보다는 저게 낫다”고 옹호한다.

이 프로그램이 지난 7월 파일럿 방영 이후 정규방송 4회 만에 금요일 밤 예능의 선두가 된 비결이 바로 이런 거다. 유명한 스타도 늙으신 어머니들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은 순수하고 애잔하다. 노년의 어머니들인지라 하나같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아들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기 바쁘다.

어쩌면 이 아들들은 자아심리학의 대가 에릭 에릭슨(1902~1994)이 분류한 8가지 발달단계 중 청년기에 멈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초기 성인기인데도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성취보다 이혼이나 자아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젖병 대신 술병을 물고, 아내 대신 청소기를 끌어안으며 자식 대신 TV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이들이지만 누가 뭐래도 효자 중 효자다. 자타공인 ‘결벽남’ 허지웅이 먼지를 몰고 다니는 ‘방송국 놈들’의 자택 침입을 허용한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젊은, 홀로 된 어머니가 세상과 소통하길 바랐다는 것. 클럽 마니아 박수홍 역시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문자와 전화에 늘 화답한다.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다친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이런 아들들이 어디 흔한가. ‘미운 우리 새끼’가 백조의 날갯짓을 하는 한, 어머니들의 정겨운 잔소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