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은 잊어라…1인 가구 시대의 콘텐츠 생존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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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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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을 벗어난 콘텐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TV를 보는 안방극장이란 개념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TV는 더 이상 공유의 대상이 아니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 ‘각자의 TV’로 혼자만의 콘텐츠를 즐긴다. 콘텐츠 향유의 개별화·파편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맞춘 콘텐츠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새로운 생존 법칙도 생겨나고 있다. ‘혼술남녀’처럼 시청자층을 세분화해 특정 세대의 삶에 맞는 가치를 제시하면 살아남는다. 반면 획일화된 가치나 가부장적 관념을 고집하면 외면당한다.
안방극장이란 표현은 거실이 생기기 이전인 1960년대, TV가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안방’에 놓였기 때문에 나왔다. TV 시청은 곧 공동의 취미가 됐다. 할아버지가 보는 프로그램을 아빠도 보고 손주도 봤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같은 가치를 나눈 것이다. 하지만 50여년이 지난 현재 이런 모습은 매우 생소하다. 3대가 같이 사는 집은 찾아보기 드물뿐더러 온 가족이 다같이 TV 앞에 모이는 일도 흔치 않다. 임종수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현대 생활문화사에서 “TV 시청이 개인의 문화로 바뀌고 있다. 세대 간 최대공약수를 만들기보다 더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이런 시청 환경의 변화에 따라 콘텐츠의 성패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tvN의 예능 ‘내 귀에 캔디’는 콘텐츠 개별화의 중심에 있는 1인 가구를 집중 공략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청춘도 사실은 외롭다. ‘내 귀에 캔디’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스마트폰 너머의 타인에게 속마음을 가감 없이 털어놓도록 유도한다.
SBS의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는 한발 더 나아간다. 솔로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의 삶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국제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자식들의 말에 부모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노년층의 고독과 삶을 들여다보는 콘텐츠도 인기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호평받은 것은 고령화 사회에 맞춰 타깃을 정확히 설정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간 덕분이다.
과거처럼 가족을 논하는 것은 어려울까. 충분히 가능하다. KBS의 드라마 ‘아이가 다섯’은 기존엔 잘 다루지 않았던 재혼 부부의 삶을 조명했다. 이 작품은 다시 가정을 이루는 과정과 갈등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30%가 넘는 시청률을 달성했다. 반면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거야’는 10%에 못 미치는 시청률로 씁쓸하게 종영했다. 20여년 전 그가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보여줬던 가장 중심의 설정이 그대로였고 여자가 무조건 참는 성관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962년 국내 한 매체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2만2000여대의 TV가 서울 장안에 ‘안방극장’을 차렸다.” 각자의 방에도 TV가 놓이며 현재 수상기 등록대수는 2300만대를 넘어섰다. 여기에 노트북, 스마트폰까지 더해진 것을 다시 떠올려보자. ‘손안의 TV’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때, 콘텐츠는 어딜 향해 가야 할까. 안일하게 안방에 머무는 것은 답이 아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