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정규재 칼럼] 구속된 벤처인 김인식의 경우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벤처인 누구나 1%에 목숨을 건다
    미완성을 사기라면 누가 벤처하나
    검찰 수사가 미칠 파장을 걱정한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정규재 칼럼] 구속된 벤처인 김인식의 경우
    지난 주말 바이올시스템즈라는 작은 회사의 대표가 사기죄로 구속됐다. 남상태 전 사장 재직 시절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44억원의 투자를 받았는데 이것이 사기였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회사 대표 김인식은 바이오에탄올을 상용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능력이 없는데도 상용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남상태 전 사장과 대우조선을 속여 투자를 받았다. (이 사건을 논하기에 앞서 김인식 대표가 오래전 퇴직한 한경 기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두는 것이 좋겠다)

    2009년 설립된 이 회사는 다른 많은 창업 기업들이 그런 것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온 것 같다. 우뭇가사리로부터 바이오 연료를 뽑아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 되겠다는 꿈은 그러나 지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회사 대표가 사기꾼이 됐으니 타격이 클 것이다. 해조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뽑아내는 원천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험실에서의 기술이었을 뿐 상업용 양산기술은 없었다는 점, 필리핀에 10만㏊의 우뭇가사리 양식장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확보된 면적은 55㏊에 불과했다는 점, 매일 20t의 해조가 필요하지만 실제 이 회사가 실험에 사용한 해조는 모두 합쳐 44t에 그친 점 등이 사기였다는 것이다. 검찰 발표를 들으면서 이 회사가 “꽤 앞으로 나아갔었구나”라는 정반대 생각을 갖게 됐다. 1%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것이 기술벤처라는 것을 생각하면 회사를 설립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놀라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것이 옳았는지는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투자가 사기의 결과였는지는 논란거리다. 이 기술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로 지정할 정도로 정부 역시 강한 의욕을 보여 왔다. 국책연구소의 젊은 연구원들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나와 인생을 걸었다. 벤처기업의 사기란 무엇인지, 그리고 의도가 없는 사기가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검찰이 김인식을 엮은 것은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을 치기 위한 일종의 걸쇠로 보지만 강 전 행장을 사기 공범, 아니라면 다른 무슨 죄목으로 처벌할지도 궁금하다.

    문제는 남상태의 증언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만일 남상태가 강만수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했다고 주장한다면 김인식의 사기죄는 무죄가 된다. 그런데 검찰은 지금 대우조선의 투자는 김인식의 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일 사기로 결론이 난다면 이번에는 강만수의 강압 혐의가 무죄가 된다. 검찰 설명으로는 대우조선 실무선에서는 투자에 반대했다는 것인데, 그 경우라면 역시 사기혐의는 무죄다. 실무자들의 반대에도 회사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은 아주 웃기는 주장이 되고 만다.

    결국 사기가 무죄가 되거나 강압이 무죄가 되는 일종의 양자택일 딜레마 게임이 되고 만다. 무분별한 사기죄 적용도 문제다. 만일 기술의 완성도가 낮고 장차의 계획이나 의도만으로 투자받는 행위를 사기로 본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벤처를 사기죄로 예비검속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업 내용이 이미 충분히 투자할 만한 단계로까지 완성돼 있다면 이번에는 그 기업이 이미 벤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야 마땅하다. 이 역시 모순이다. 검찰이 적시한 사기 항목들은 누구라도 간단한 실사만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험 실적이나 우뭇가사리 재배 면적 따위는 초보 수사관이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 김 대표나 강 전 행장을 옹호하기 위해 장황한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앞으로는 성공한 기업이 아니면 그 어떤 벤처도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사업 전망은 불투명하고 내일에 대해서는 절망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벤처의 현실이며 본질이다. 과감한 계획과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누구라도 그 1%의 가능성에 미래를 걸고 오늘을 살아간다. 바로 그 99%의 실패 가능성을 지금 검찰은 원천 부정하고 있다. 짜맞추는 수사라는 것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기고] 서학개미, 고환율 주범 아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당국의 고심 또한 깊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최근 환율 상승의 원인을 해외 주식 투자에서 찾는 일부 시각에는 깊은 우려가 든다.환율은 수많은 거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고, 그 가격이 다시 수급을 조절하는 중요한 가격 질서다. 특히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환경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의 가치를 ‘달러 베이스’로 판단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 관리를 위한 인위적인 조정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실제로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달러 베이스로 환산한 가격이 낮아져 외국인에게는 매력적인 진입 기회가 된다. 또한 국내 투자자들 역시 환차익 실현을 위해 해외 자산을 팔고 국내로 돌아올 것이다. 당국은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국민들이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위대한 기업’과 함께하려는 본능적 선택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5년간 해외 주식 비중을 37%까지 확대해온 결과, 2024년 해외 주식 수익률 34%라는 성과를 거뒀다. 개인투자자 역시 올해 미국 주식 자산이 2021년 대비 세 배 이상 급증하며 성장 과실을 향유하고 있다.대외 자산 축적은 국가 차원에서도 중대하다. 첫째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없이 중요한 자본소득을 학습하는 기회가 된다. 생성형 AI가 서비스 소득을 대체하고, 피지컬 AI가 노동 소득을 대체할 미래에 자본소득은 중요한 생존 수단이다. 둘째는 국가적 금융 재난 시 강력한 외환 방어막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외환위기 당시에 버금가는 &lsquo

    2. 2

      [한경에세이] 꼰대 방지의 기술

      젊은 세대를 훌쩍 넘긴 내가 MZ세대를 이야기해도 될까,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다만 이미 ‘꼰대’라 불리는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구청장으로 일하다 보면 수많은 보고서와 통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접한다. 정책을 설계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꼭 필요한 자료들이다. 그런데 세대 간 소통, 특히 MZ세대와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외로 집에서 가장 많이 배운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아내와 1990년대생 직장인 딸, 그리고 2000년대생 대학생 아들은 내가 꼰대가 되지 않도록 늘 점검표를 들이대는 가장 엄격한 평가단이다.물론 가족들이 늘 내 생각과 일상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딸과 아들은 각자 바쁘게 살아간다. 그래서 집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올 때는 대개 꽤 중요한 사안인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패션이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며 셔츠를 고민하고 있으면, 딸이 나타나 ‘퍼스널 컬러’라는 낯선 개념을 꺼내 든다. 그러고는 주저 없이 말한다. “아빠 지금 패션, 솔직히 완전 구리다.” 덕분에 이제는 퍼스널 컬러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조금은 알게 됐다.이런 가감 없는 평가는 때로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런 경험들이 MZ세대 직원들을 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MZ세대에 변화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관점과 의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소통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

    3. 3

      [최석철의 자본시장 직설] 정치 문턱에 선 회계기준원

      지난 19일 한국회계기준원 회원총회를 앞두고 몇몇 회원사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금융감독원 쪽 인사였다. “지지 후보를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는 취지의 전화였다. 새로운 회계기준원장 선임 표결을 몇시간 앞두고도 전화가 울렸다.회계기준원 원장추천위원회(위원장 정은보)는 앞선 11일 지원자 면접을 실시하고 한종수 이화여대 교수를 1순위, 곽병진 KAIST 교수를 2순위로 선정했다. 회원총회에선 1순위인 한 교수 선임을 의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감원 개입으로 결과는 뒤집혔다. 총회 표결 결과 2순위였던 곽 교수가 1순위였던 한 교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받아 신임 원장에 선임됐다.이번 회계기준원 사태는 단순한 인사 잡음이 아니다. 원장 선임 과정에서 외부 영향력이 작동했다는 의혹은 회계기준원의 중립성과 독립성 자체를 흔든다. 회계기준원이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회계기준 신뢰 전제조건 '중립성'회계기준원은 1999년 설립 이후 기업회계 기준의 제정과 개정·유권해석을 맡아온 민간 독립기구다. 상장사와 금융회사, 보험사, 비상장기업까지 광범위한 회계 기준에 영향을 미친다. 회계기준원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온 이유는 명확하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제 기준과 기술적 논리에 따라 판단해 왔다는 전제다. 이번 원장 선임 과정에서 이런 전제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불씨는 이미 있었다. 이한상 회계기준원장은 올해 보험업권 회계 논란을 제기하며 전면에 나섰다. 회계기준원이 특정 기업의 회계 처리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회계 처리의 적정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