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내비도 모르는 '생활도로구역'…골목길 공포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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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보행자 사망 OECD 1위' 오명 벗기 나섰지만…
도입 6년, 전국 277곳에 불과
시속 30㎞ 속도제한에도 홍보 부족해 이면도로 과속 여전
이면도로 교통사고 1위 강남구
생활도로구역은 한 곳도 없어…"자치구 예산부담에 기피"
도입 6년, 전국 277곳에 불과
시속 30㎞ 속도제한에도 홍보 부족해 이면도로 과속 여전
이면도로 교통사고 1위 강남구
생활도로구역은 한 곳도 없어…"자치구 예산부담에 기피"
서울 관악구에 사는 주부 조모씨(37)는 유모차를 끌면서 10초마다 뒤를 돌아본다. 동네 이면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량으로 인해 생긴 습관이다. 지난 5월 인근 이면도로에서 다섯 살 유치원생이 길모퉁이를 돌아 우회전하던 마을버스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 뒤 더 자주 뒤를 살핀다. 당시 버스 운전기사는 도로 폭 6m도 되지 않는 도로를 지나다 불법 주차된 차량에 가려진 아이를 보지 못해 사고를 냈다. 조씨는 “3년 전 딸을 가진 뒤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도 마음이 편치 않다”며 “좁다란 도로에서 자동차나 버스가 유모차 옆을 지날 때마다 혹시 부딪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인다”고 말했다.
이면도로는 주거지 주변에 있는 폭 9m 미만의 좁은 도로를 말한다. ‘생활도로’라고도 불린다. 보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다 보니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4621명 중 2586명(55.9%)이 이면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동네 주민들에게 이면도로가 ‘공포’로 인식되는 이유다. 택시기사도 모르는 ‘생활도로구역’
특히 보행자 안전은 가장 취약하다. 한국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어린이 교통사고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3년간 발생한 12세 이하 어린이의 보행 중 교통사고는 1만4401건으로, 124명이 숨지고 1만4638명이 부상을 입었다.
보행자를 위협하는 요인은 차량 속도에 있다. 한국의 도시 내 차량 제한 속도는 시속 60㎞로 OECD 평균인 50㎞보다 높다. 프랑스 파리에선 전체 도로의 3분의 1가량에서 시속 30㎞ 이상 달릴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등을 제외하곤 이면도로에서도 시속 60㎞로 달릴 수 있다.
경찰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2010년부터 이면도로 보행 사고를 줄이기 위해 ‘생활도로구역’ 지정에 나서고 있다. 사고가 잦은 주거·상업지구의 이면도로에서 차량 제한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기 위해서다.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되면 속도제한 규정(시속 30㎞)을 알리는 표지판과 노면표시, 과속방지턱 등이 설치된다.
생활도로구역은 도입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전국 277곳(올해 6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 2013년 말 47곳에서 2014년 말 77곳, 2015년 말 259곳으로 2~3년 새 가파르게 늘다가 올 들어 다시 주춤하고 있다.
무엇보다 생활도로구역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의 한 택시 운전기사는 “(속도제한)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고 ‘생활도로’라는 단어 자체도 처음 듣는다”며 “초등학교 근처 어린이보호구역은 내비게이션에서도 안내되지만 생활도로구역 안내는 없다”고 했다. 생활도로구역에선 실질적으로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물지 않다 보니 내비게이션업체가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금지구역 등만 안내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면도로 보행자 사고 1위 강남구
이면도로 교통사고가 가장 잦은 서울에선 생활도로구역이 23곳에 불과하다. 생활도로구역이 한 곳도 없는 자치구도 14곳에 이른다. 지난해 이면도로 보행자 교통사고가 508건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았던 강남구에는 생활도로구역이 한 곳도 없다. 서초·송파·성동·용산·관악구 등에도 전혀 없다.
자치구들은 생활도로구역이 도로교통법에 규정되지 않아 지정이 의무화되지 않은 데다 예산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생활도로구역을 한 곳 지정하면 1억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된다”며 “국비나 시비 지원이 없기 때문에 도로 관련 구 예산을 사용하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등 주요 자치구는 생활도로구역을 지정하는 대신 교통사고가 많은 도로의 특정 구간에서 속도를 제한하는 ‘이면도로 제한 속도 하향’ 지정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강남대로110길 110여m 구간의 속도 제한을 시속 30㎞로 두고 속도 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하는 식이다. 사고가 잦은 일부 도로만 지정하면 되기 때문에 특정 구역 내 모든 도로를 관리하는 생활도로구역보다 예산이 적게 든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지자체가 떠안는 예산 부담이 적어 그동안 생활도로구역보다 이면도로 제한 속도 하향 지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운전자 입장에서 생활도로구역과 헷갈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가연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생활도로구역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있지만 법제화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보행자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입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이면도로는 주거지 주변에 있는 폭 9m 미만의 좁은 도로를 말한다. ‘생활도로’라고도 불린다. 보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다 보니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4621명 중 2586명(55.9%)이 이면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동네 주민들에게 이면도로가 ‘공포’로 인식되는 이유다. 택시기사도 모르는 ‘생활도로구역’
특히 보행자 안전은 가장 취약하다. 한국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어린이 교통사고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3년간 발생한 12세 이하 어린이의 보행 중 교통사고는 1만4401건으로, 124명이 숨지고 1만4638명이 부상을 입었다.
보행자를 위협하는 요인은 차량 속도에 있다. 한국의 도시 내 차량 제한 속도는 시속 60㎞로 OECD 평균인 50㎞보다 높다. 프랑스 파리에선 전체 도로의 3분의 1가량에서 시속 30㎞ 이상 달릴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등을 제외하곤 이면도로에서도 시속 60㎞로 달릴 수 있다.
경찰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2010년부터 이면도로 보행 사고를 줄이기 위해 ‘생활도로구역’ 지정에 나서고 있다. 사고가 잦은 주거·상업지구의 이면도로에서 차량 제한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기 위해서다.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되면 속도제한 규정(시속 30㎞)을 알리는 표지판과 노면표시, 과속방지턱 등이 설치된다.
생활도로구역은 도입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전국 277곳(올해 6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 2013년 말 47곳에서 2014년 말 77곳, 2015년 말 259곳으로 2~3년 새 가파르게 늘다가 올 들어 다시 주춤하고 있다.
무엇보다 생활도로구역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의 한 택시 운전기사는 “(속도제한)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고 ‘생활도로’라는 단어 자체도 처음 듣는다”며 “초등학교 근처 어린이보호구역은 내비게이션에서도 안내되지만 생활도로구역 안내는 없다”고 했다. 생활도로구역에선 실질적으로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물지 않다 보니 내비게이션업체가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금지구역 등만 안내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면도로 보행자 사고 1위 강남구
이면도로 교통사고가 가장 잦은 서울에선 생활도로구역이 23곳에 불과하다. 생활도로구역이 한 곳도 없는 자치구도 14곳에 이른다. 지난해 이면도로 보행자 교통사고가 508건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았던 강남구에는 생활도로구역이 한 곳도 없다. 서초·송파·성동·용산·관악구 등에도 전혀 없다.
자치구들은 생활도로구역이 도로교통법에 규정되지 않아 지정이 의무화되지 않은 데다 예산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생활도로구역을 한 곳 지정하면 1억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된다”며 “국비나 시비 지원이 없기 때문에 도로 관련 구 예산을 사용하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등 주요 자치구는 생활도로구역을 지정하는 대신 교통사고가 많은 도로의 특정 구간에서 속도를 제한하는 ‘이면도로 제한 속도 하향’ 지정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강남대로110길 110여m 구간의 속도 제한을 시속 30㎞로 두고 속도 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하는 식이다. 사고가 잦은 일부 도로만 지정하면 되기 때문에 특정 구역 내 모든 도로를 관리하는 생활도로구역보다 예산이 적게 든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지자체가 떠안는 예산 부담이 적어 그동안 생활도로구역보다 이면도로 제한 속도 하향 지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운전자 입장에서 생활도로구역과 헷갈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가연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생활도로구역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있지만 법제화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보행자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입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