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투자 심리·국가신용등급 상승에 원화 절상
美 금리인상 등 불확실성 커지면 반등…당국 "과도하면 안정 조치"


원/달러 환율이 14개월여 만에 1,100원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095.4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5월 22일 달러당 1,090.1원 이후 1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감이 희석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투자 심리가 강화된 영향으로 최근 원/달러 환율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글로벌 수요가 줄어들어 수출이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수출기업의 어려움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의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하향 추세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원/달러 환율은 국제유가의 하락과 중국의 경제 부진, 미국 금리 인상 기대감 등의 영향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2월 29일에는 장중 1,245.3원까지 치솟아 5년 8개월 만에 1,240원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사이에 이제는 원/달러 환율의 급락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6월부터 미국에서 예상을 밑도는 경제지표들이 나오면서 조기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 달러를 약세로 돌려놓았다.

지난달 말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코멘트가 나오지 않자 글로벌 위험투자 심리가 더 강해져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에 속도가 붙었다.

브렉시트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자 영국과 일본 등에서 완화책을 내놓으면서 유동성이 확대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대 수준인 'AA'로 올리자, 원/달러 환율은 1,100원 선까지 위협하는 수준으로 내려갔다.

시장에서는 내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결과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나올지가 주목된다"며 "소수의견이 없다면 원/달러 환율이 1,090원 선 아래로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장세는 전저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1,090원 선이 뚫리면 다음의 과거 저점인 1,060~1,070원 선 수준까지도 밀려 내려갈 수 있다"며 "외환 당국에서도 그 위험성에 대비하려 오늘 1,090원 선을 지키려는 개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원화 절상에 심리가 쏠려 있어 원/달러 환율 1,100원 선이 깨졌다"며 "다만 미국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 이후 유럽의 불확실성, 중국 경제 등 불안요인이 불거지면 또 반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위원은 단기적인 등락보다는 중·장기적인 흐름이 원화 절상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미국 금리 인상 우려와 중국의 경제불안 등으로 원화가 절하 추세를 보여왔는데, 절상 흐름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율 하락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수입물가가 낮아져 수입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고 국내 물가 안정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수출기업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창선 위원은 "그동안 수출기업들이 매출이 좋지 않았음에도 수익성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 왔으나, 이 추세가 반전될 수도 있다"며 "하반기와 내년에는 수출이 플러스로 반전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수출 회복 기조가 꺾일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6개월 사이에 1,240원대와 1,100원대를 오간 것에서 보이듯 원/달러 환율이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는 것도 불확실성을 높여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본부장은 "갈 곳을 잃은 유동성이 계속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원화가 절상되는 것으로, 대외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원/달러 환율 하락 배경을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하지만 "이런 추세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불확실한 외환 장세가 지속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수출과 투자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환율이 어디까지 가느냐는 종잡을 수 없다"면서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와 경제 변수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원화 절상 속도가 빠른 상황이라 우려를 가지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쏠림이 발생하면 필요한 안정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김수현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