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다는 이들의 소위 민생투어라는 것을 보면 한 시대 전 계몽활동의 묘한 코스프레가 느껴진다. 자세히 보면 바랑 하나 짊어지고 만행(萬行)에 나선 구도자의 진지한 모습도 덧대진다. 하나의 이미지 정치랄까. 대중에게서 잊혀지는 게 두려워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는 이류 연예인들의 행태와도 닮았다고나 할까. 노출의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메시지 전달 기법에서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큰 선거라도 앞두면 여야 정치인들이 경쟁을 벌인다.
엊그제 민생투어에 나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밀짚모자 쓴 사진이 지면에 실렸다. 시동을 건 곳은 세월호의 팽목항이었다. 지난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달 가까이 히말라야 투어를 하고 왔다. ‘천리행군을 떠나는 심정으로 비우고 채워서 돌아오겠다’던 그는 극빈국 네팔과 부탄에서 뭘 배웠을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그랬다. 몇 년 전 정치계획표가 빗나가자 미국행을 택했다. 한때 그의 멘토 정치인이 “미국에서도 대표적 부촌인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의 숲길을 산책하며 국민의 고통이 느껴졌겠습니까”라며 쓴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다시 화제가 된 미국길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패한 정동영 후보도 이듬해 몇 개월간 미국으로 나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비 때마다 외유에 나선 직업 정치인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손학규 전 의원은 이 점에서 개성파다. 강진의 산골에서 2년을 칩거했다. 물론 말이 칩거지 수시로 언론에 노출되더니 결국 정계로 복귀한다고 한다. 흙담집을 토굴이라는 것에서도 ‘정치적 작명’ 분위기가 풍겼다.
정치인들이 민생투어와 토굴사색에서 무엇에 집중하며, 어떤 공부와 연구를 할까. 해외원정에선 어떤 지식과 문물을 받아들였을까. 스스로 지도자로 나서니 그런 준비를 제대로 하는지, 그게 관심사다. 하루하루가 바쁜 보통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자기 시간을 갖는 것부터 경비문제까지 다 궁금할 것이다. ‘민중 속으로!’가 아니라 ‘표 속으로!’라는 행보로 본다면 너무 야박한 평가가 될까? 정치 하는 이들의 만행(萬行)이 다양해지는 걸 보니 또 대선이 다가온 모양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