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7대 금융협회장 모두 '관(官) 대신 민(民)'
김덕수 전 KB국민카드 사장이 7일 여신금융협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됐다. 이르면 다음주 열리는 회원사 총회에서 신임 협회장으로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이로써 7대 금융협회장을 모두 민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맡게 됐다. 전국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여신금융협회 신용정보협회 등 7대 금융협회장 자리는 한때 퇴직 고위 관료들이 도맡았다. 2014년 6월까지만 해도 박종수 당시 금융투자협회장을 제외하고 6개 협회 수장이 모두 관료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불거진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으로 퇴직 관료의 금융협회장행(行)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후 장남식 전 LIG손해보험 사장의 손해보험협회장 취임을 시작으로 1년9개월여 만에 7대 금융협회장을 모두 민간이 차지하게 됐다.

◆관료 출신 후보 최소 득표에 그쳐

이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여신금융협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관료 출신이 차지하고 있던 마지막 금융협회장 자리에 대한 선임 절차라는 점에서 금융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을 놓고 김덕수 전 사장과 황록 전 우리캐피탈 사장 간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런데 옛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인 우주하 전 코스콤 사장이 갑자기 뛰어들면서 경쟁 구도가 복잡해졌다.

여신금융협회는 회원사 구성이 다른 협회와 다르다. 15명의 회추위원 가운데 여신금융협회 감사를 제외한 14명을 카드사와 캐피털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양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카드사와 캐피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오히려 관료 출신이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구상업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우 전 사장이 힘깨나 쓴다는 정부 측 인사가 많은 대구·경북(TK) 출신인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여신금융협회 회추위원들은 투표를 통해 민간 출신을 선택했다. 3명을 대상으로 치러진 1차 투표에서 황록, 김덕수, 우주하 후보는 각각 7, 6, 1표를 얻었다. 정식 투표 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1표는 무효 처리됐다.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어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벌인 2차 투표 결과 김 후보가 8표를 얻어 황 후보(7표)를 제치고 차기 협회장으로 내정됐다.

투표에 참가한 A사장은 “과거엔 금융당국이 특정 후보를 사실상 내정하면 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관행이었다”며 “하지만 이번엔 자유의지에 따라 투표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다른 투표 참가자는 “여신금융협회장도 이제는 민간 출신이 할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그 때문에 관료 출신보다는 카드나 캐피털 분야에 대해 이해가 깊은 민간 출신 두 후보에게 표가 몰렸다”고 말했다.

◆민간 출신 금융협회장 시대

당초 유력하던 황 전 사장이 1표 차이로 고배를 마신 것은 우리금융 출신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동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에 이어 황 전 사장까지 여신금융협회장에 오르면 7대 금융협회장의 절반 이상을 우리금융 출신이 차지하게 되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김희태 신용정보협회장도 우리은행 부행장과 우리아비바생명 사장을 지냈다.

관료가 독식하던 금융협회장 자리를 민간 출신들이 맡은 초기만 해도 협회 안팎에서는 “국회, 정부와 협력하는 데는 관료 출신보다 취약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김희태 신용정보협회장 등은 수십년간 축적한 전문성과 경험으로 정부와 국회에 규제개혁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적극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에서는 민간 금융협회장 시대가 이제 하나의 큰 ‘흐름’이 된 만큼 앞으로 금융협회장 자리에 관료 출신이나 정치권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주요 경제 부처 공무원 사이에서도 “행정고시 선배나 정치권 출신보다는 민간 금융회사 출신이 협회장을 맡은 뒤 일처리가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말이 나온다.

류시훈/윤희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