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대학들을 위한 5000억원 규모의 대출전용기금을 3년에 걸쳐 조성한다. 재정에 여유가 있는 ‘부자 대학’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한 뒤 기존 고(高)금리 대출을 낮은 금리로 갈아타거나 급전이 필요한 대학에 빌려주는 구조다. ‘대학기금 품앗이’ 형태로 대학들은 연간 수십억원의 이자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최대 1조원(예금+대출)의 자산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에 은행들은 비상이 걸렸다.
5000억 '사립대 상생 대출기금' 만든다
◆대학 간 기금 활용 상생모델

24일 각 대학에 따르면 교육부는 산하 기관인 한국사학진흥재단이 5000억원 규모의 특수채를 발행해 기금을 조성하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발행 금리는 연 2.4%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적립금을 대부분 은행 예금에 넣어두고 있는 대학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 높은 금리의 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사학진흥재단은 이렇게 조성한 자금을 지방 대학 등이 고금리 차입금을 갚을 수 있도록 연 2.5%의 금리로 빌려준다.

5000억 '사립대 상생 대출기금' 만든다
대학들이 은행에서 빌린 금액은 7000억원가량이다. 이 중 약 4000억원이 연 3.5% 이상의 고금리 대출이라는 게 교육부 등의 추산이다.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과거 금리가 높던 시기에 분할상환 방식으로 빌린 차입금이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다”며 “대학들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신용등급이 낮아 저금리로 갈아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출기금 조성을 통해 ‘부자 대학’들을 위한 새로운 기금운용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부분 사립대가 적립기금을 은행 예·적금에 묶어둬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운용’을 하고 있다는 게 교육부의 지적이다. 연 1%대의 ‘쥐꼬리’ 이자를 받는 은행 예금에서 돈을 빼 연 2.4%짜리 채권에 투자하면 대학들은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상품을 확보할 수 있다.

◆기재부 예산승인 절차 남아

‘부자 대학’들조차 병원 기숙사 등을 짓기 위한 가용 재원이 고갈됐다는 점도 교육부가 기금 조성에 나선 이유 중 하나다. 적립기금이 8000억원에 육박하는 이화여대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의료원과 의과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지난해 은행에서 약 3000억원을 빌리면서 꽤 높은 금리를 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록금이 장기간 동결된 데다 기금운용 수익률도 낮아 각 대학의 수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부금은 대부분 장학금 등 특정 목적에 쓰이도록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 대학들은 병원이나 기숙사 건설 등 대규모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을 할 때마다 고금리 은행 대출을 이용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 시내에 있는 사립대 A대학 재무팀장은 “홍익대처럼 긴축경영을 하고 있는 몇몇 대학법인을 제외하고 서울에 있는 사립대들조차 법인 재무 상황이 최악에 가깝다”며 “5~6년 안에 많은 대학재단이 무너질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은행들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부자 대학’들이 예금을 빼 사학재단 채권을 사고,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들이 빚을 갚아버리면 예금과 대출자산에서 최대 1조원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출기금으로 저리에 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 은행들도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올 하반기에 기금 조성을 마칠 계획이다. 다만 기획재정부 승인이 변수로 남아 있다. 국고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산하기관이 부채를 일으키는 것인 만큼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