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 한국경제연구소(KEI) 주최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동맹 강화’ 세미나 행사장. 패널들이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안보 공약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중 청중석 한 사람이 불쑥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는 “저기 트럼프 캠프에서 온 사람이 있으니 (공약 관련 내용을) 직접 물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 사람은 지나가는 길에 들렀는지 넥타이는 물론 재킷도 걸치지 않은 셔츠 차림이었다. 청중석에 있던 참석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명함을 건네자 그는 쫓기듯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요즘 워싱턴DC에서는 트럼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의 인기가 ‘상한가’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주자로 확정된 뒤 본선까지 휩쓸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와 관련한 정보 수요는 폭발하고 있지만 공급은 극히 적어서다.

다른 나라에서 갖는 관심은 더하다. 최근 폴란드를 다녀온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트럼프 관련 질문뿐이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지,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인 코리 르완도우스키(폴란드계)를 통해 캠프에 줄을 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왔다는 한 미국 기업인은 “워싱턴DC보다 서울에서 트럼프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각국이 트럼프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 주된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미국의 기존 외교·안보 정책과 대외경제 정책에 큰 변화가 닥칠까 우려하고 있다. 일례로 트럼프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100% 부담해야 한다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고 트럼프 공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회’로 보자는 시각도 있다. 워싱턴DC에서 근무하는 한 경제학자는 “트럼프 공포증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쏟아내는 격한 언어와 공약들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의 출현, 미국 정치의 세대교체, 판을 뒤엎는 경쟁 룰 등 여러 가능성을 활용하는 역발상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생뚱맞지 않게 들렸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