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vegetarian)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고 한다. 가장 엄격한 단계는 비건(vegan)이다. 절대적 채식주의자로 육류, 해산물, 각종 알, 유제품 모두를 먹지 않는다. 오보 베지터리언(ovo vegetarian)은 육류 중 달걀만 먹는다. 락토 베지터리언(lacto vegetarian)은 육류 중에서 유제품만 취한다. 락토 오보 베지터리언(lacto ovo vegetarian)은 동물의 알과 유제품 이외 육식은 안 하는 경우다. 세미 베지터리언은 고기나 유제품은 가끔 먹지만 전반적으로 채식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채식의 이유는 다양하다. 각종 성인병이나 알레르기 예방 등 건강상 이유가 가장 흔하다. 육식이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확률을 높인다는 게 의료계에서는 거의 정설이다. 서양인 중 채식주의자가 많은 것은 동양인에 비해 육류 관련 알레르기가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종교적 이유나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육식을 금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동물을 비인도적 방식으로 기르고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하는 것에 항의하는 뜻으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많다.

소설가 한강 씨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다.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라는 세 이야기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육식으로 상징되는 권력 내지는 폭력에 저항해 육식과 육체적 욕망을 거부하고 나무처럼 되기를 바라다 결국 미쳐버리는 한 여성을 그렸다. 어릴 적 자신을 문 개를 잔인하게 죽였던 권위주의적 아버지가 강제로 탕수육을 먹이려 하자 칼로 자해를 하는 장면은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워낙 유명한 상을 받은 데다 반려동물 인구도 늘고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우려되는 것은 혹시라도 이 책이 ‘육식=악’ ‘채식=선’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확산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식물에도 생명이 있고 채식도 그런 점에서는 살생이다. 우리 눈에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고 붉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식물을 무생물처럼 취급하는 시각도 우스운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살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은 식물에 부족한 단백질과 칼슘, 철분, 비타민B12 등을 육식을 통해 보충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따지고 보면 육식동물의 먹이활동은 ‘잔인하다’면서 초식동물이 풀 뜯는 모습은 ‘평화롭다’고 묘사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