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선 한 달 걸릴 의사결정, 기업은 이틀 만에 끝내"
“‘돈’이라는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인지 정부에선 한 달 걸릴 의사결정과정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업무의 긴박함은 비교할 수도 없죠.”(경제부처 A서기관)

“사원 대리들도 열심히 아이디어를 냅니다. 성과 측정과 보상체계가 명확합니다.”(경제부처 B과장)

민간근무휴직제가 시행된 지 약 100일이 지났다. 정부는 지난 1월 ‘문견이정(聞見而定: 현장에서 보고 정책을 결정한다)’이란 기치를 내걸고 중앙부처 공무원 57명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51개 기업에 1~3년 기한으로 파견했다. 파견 공무원들은 효율성 등 ‘민간 DNA’를 체득하고 정책 방향을 기업에 이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인’이란 인식과 공무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효율 극대화된 시스템에 감탄”

"정부에선 한 달 걸릴 의사결정, 기업은 이틀 만에 끝내"
공무원들은 민간의 장점으로 ‘선택과 집중’ ‘효율 극대화’를 꼽았다. ‘이익 증대’란 명확한 목표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내놨다. 대기업에 근무 중인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뿐만 아니라 국무조정실, 청와대 등 상위 부처 보고가 많아 정책 결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민간엔 불필요한 보고가 없고 부장이 바로 최고경영자(CEO)에게 찾아가는 결재 시스템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한 사회부처 서기관은 “논리나 문구를 중요시하는 공무원과 달리 민간은 시각자료 등을 활용해서 간단명료하게 보고하는 것에 감탄했다”고 했다.

민간기업의 명확한 성과보상체계에 매료된 공무원도 있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대리들도 열심히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정책 제안을 한다”며 “제안이 빠르게 실적(매출)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인지 성과 측정과 보상체계가 확실하다”고 평했다.

직원 교육이 체계적이란 평가도 있었다.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경제부처 과장은 “의무 교육 시간이 있고 신입직원 직무수행 중 교육(OJT), 직급별 교육이 상당히 체계적”이라며 “공무원들의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도 직급별로 교육을 세분화하고 전문가들을 자주 초빙해 심층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빠른 출근시간이 경쟁력을 키운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임원들이 오전 6시30분까지 출근하는 게 낯설었다”며 “처음엔 일찍 출근하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시간 활용 측면에서 만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상머리 정책 반성”

자성의 목소리도 많았다. 금융회사에 근무 중인 한 공무원은 “선의로 만든 정책이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에 정책을 내놨지만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민간의 동료들이 불이익이 두려워 공무원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며 “공직으로 돌아가면 소통을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민간에서 느낀 아쉬움도 나타냈다. 대형 제조업체에 근무 중인 한 공무원은 “부서 간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동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입김이 센 기업에 대해선 “의사결정에 사사건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답답해 보였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공무원은 “처음 회의에 들어갔을 때 동료들이 말조심하는 게 느껴졌다”며 “‘영업기밀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먼저 약속한 뒤에야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만든 발전 전략’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 사회부처 공무원은 “장기 계획을 짜는데 익숙한 공무원 입장에서 보니 기업들은 단기 매출과 영업이익에 너무 집착해 5~10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을 놓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핵심업무 참여 늘려야”

민간근무휴직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건의도 많았다. 8년 만에 재시행되다 보니 공무원이나 기업 모두 준비가 덜된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투자 결정 등 핵심 업무가 아닌 자문, 직원 교육 등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업무를 맡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란 설명이다. 이 탓에 일부 공무원들은 “민간 기업 경영의 핵심 노하우를 본질적으로 배울 수 없는 제도”란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민간근무휴직제에 들어간 공무원에 대한 임금 지급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간근무휴직 공무원은 정부에서 받던 월급의 최대 1.3배(성과급 포함 시 1.5배)까지 받을 수 있는데, 해당 월급은 전액 민간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한 공무원은 “민간에 배우러 간 측면도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이 월급을 나눠 부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에선 민간근무휴직제가 장기간 운영되다 보면 자칫 ‘향후 공무원과 기업인이 유착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직에서 직전 5년 동안 맡은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민간 기업에선 일하지 못하도록 했고 공직 복귀 이후에는 최소한 민간 근무 기간만큼은 사직할 수 없다”며 “복무 점검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제도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황정수/오형주 기자 hjs@hankyung.com